올해 초 모 의원실에서 시무식날 술에 약한 동료 여성에게 억지로 술을 먹여 몸을 못 가누게 할 정도로 괴롭히고, 노래방에서 여성을 불러 성접대를 받는 추태가 벌어졌다. 술에 취한 여성에게는 추행을 하는 등 성폭력을 휘두르는 사고가 발생해 피해 여성이 서울시당기위원회에 제소를 하고, 성평등강사단에서 책임자인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서가 광역시당 게시판에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의원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건대, 여성 동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래방에서 여성을 부를 정도면 평소에 어떻게 하고 돌아다니는지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생명을 사랑하는 것으로 폭력을 거부하는 것이다. 거부와 같은 적극적인 행동은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라면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며 버티는 것은 성폭력을 ‘사소한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남성우월주의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직접적인 성관계를 해야만 성매매가 아니란 것이다. 성관계 중심의 논리는 남성들이 자신이 저지른 모든 형태의 성매매를 부정하는 마지막 탈출구다. 분명히 말하지만 성을 매개로한 모든 형태의 구매 행위가 성매매다. 이렇게 성매매에 대한 관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폭력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사람 사는 곳이기에 어딜 가든 크고 작은 마찰은 있기 마련이다. 단순한 마찰이 아닌 폭력사태로 번질 때 문제는 달라진다. 한두 번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에 순간적인 실수로 언성을 높이거나 과잉행동을 한 것을 줄기차게 문제 제기 하지는 않는다. 실수일 경우 당사자들도 대부분 사과를 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피해자도 어지간하면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폭력은 실수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내재화 되어 있어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재발할지 모른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가정폭력ㆍ성폭력 등 어떤 형태의 폭력이라 할지라도 반복되어 나타나며 피해자는 엄청나게 고통을 받고 있지만 가해자는 문제를 별로 느끼지 않고 있다. 자기보다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특성이 있다. 강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간 큰 사람을 지금까지 보지도 못했지만, 약자에게는 교활하게 지속적으로 괴롭힌다. 그러기에 약자에 대한 폭력은 직접 목격하지 않으면 남들은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시민의 신문’ 최대 주주이자 경영자였던 이형모의 상근자에 대한 지속적인 성폭력에 대해 대부분은 ‘설마 그럴 리가 있나’라며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피해 여성이 문제 제기를 했을 때 처음의 말과 그 후 그가 보여준 것은 너무나 달라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우월적인 지위를 악용한 성폭력 가해자의 전형적인 말 바꾸기 행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단체라고 해서 별 다를 바 없다는 게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다. 명확한 물증이 거의 없는 성폭력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피해자 중심주의’를 채택한 민주노동당의 성폭력 처리 방침이 그나만 조금 낫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 내부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침묵의 밀약’ 때문에 자신의 일이 아니면 대부분 외면하고, ‘맞을 짓 했다’는 피해자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 때문에 문제제기를 하기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 희열을 맛 본 가해자는 2ㆍ3차 폭력을 가함은 물론이며 그로 인해 피해자의 상처는 깊어만 간다. ‘왜 바로 문제제기하고 제소하지 않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조직 내에서 혹여 왕따 당할지 모를까봐 머리 싸매기에 급급한 피해자는 그럴 엄도조차 내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정폭력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왜 맞고 사느냐’며 피해자의 나약한 심성을 나무라며 상처받은 사람들의 가슴에 다시 한 번 못질을 한다.
가해자에게 너그러운 주위 환경
몇 년 전 광주에서 당기위원장 내정자가 조직 내에서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 가해자를 두둔하면서 ‘그 사람 실수를 해서 그렇지 유능하고 할 일도 많다’며 노골적으로 감싼 적이 있었다. 철저한 남성 중심의 사고로 가해자에게 너무나도 관대한 잘못된 문화에 젖은 처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딸이나 아내가 피해를 당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지역위원장이 회의 도중 약자인 여성을 윽박지르며 모멸감을 주는 언어폭력에다 의자를 걷어차는 폭력사고가 대구에서 발생했다. 그 옆에는 갓 초등학교 입학한 어린 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폭력을 휘둘렀다. 피해 여성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침묵의 밀약’은 어김없이 작동해 당기위원회 제소와 같은 적극적인 조치 없이 대충 한 두 마디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 했다. 피해 여성은 부부 당원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그 후 가해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 다녔고 이를 쳐다보는 피해자는 주변에 ‘내 편이 없다’는 절망감에 빠졌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연말에 다른 사람이 피해자의 동의를 얻어 당기위원회에 제소를 했다. 문제는 여기서 또 발생했다.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말부터 “가만있더니 지금 와서 건드리는 저의가 뭐냐. 뒤통수치는 것 아니냐”는 등 가해자를 두둔하는 말은 수 없이 나왔으나 피해자를 위로하고 신속히 문제 제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은 안 보였다.
진보정당인 조직 전체가 가해자에게 너무나 관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소를 당하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다닌 가해자에게 아무도 자제를 요청하는 말이 없었다. 남성들의 침묵은 이렇게 끈끈하기만 하다. 아무리 ‘무죄추정주의 원칙’이라지만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이게 과연 진보정당의 문화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성평등지수가 얼마나 낮고, 폭력에 대해 둔감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탈당의 와중에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당기위원회의 징계 결과가 나왔고, 발표 몇 일전 가해자는 탈당을 했다.
약자의 편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약자인 여성에게 지역위원장이 폭력을 휘둘렀고, 이는 성폭력이라는 성평등강사단의 견해를 받아들인 당기위원회의 처분이 있었다. 이런 폭력이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불행히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남성위주의 가부장적인 문화가 사라지고 성평등의 문화가 자리 잡지 않는 한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억압적인 문화는 또 다른 약자인 청년ㆍ학생과 소수자들이 설 곳을 빼앗아가 버린다. 탈당이라는 거대담론에 묻혀 징계결과에 대해 여성들조차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않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진보신당은 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랑의 문화, 폭력이 발붙이지 못하는 평화의 문화가 가장 먼저 자리 잡도록 첫 단추를 잘 끼우지 않으면 안 된다.
가해자는 탈당 전에는 조용하더니 탈당한 지금은 피해자에게 언어폭력을 휘두르는 등 사정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폭력이 내재화 되어 있는 전형적인 가해자로서 치료받아야 사람임에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행여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가해자 재발방지 교육’을 받을 경우 재발은 수위와 횟수가 적어진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알 수 없으나 어린 시절 폭력에 노출되어 자라면서 내성이 생긴 탓에 ‘폭력에 대한 내성’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게 개인적인 견해다. 그렇다 할지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폭력이 정당화 될 수는 결코 없다.
모두가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싫어하지만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린 누구의 편에 섰는지 자신을 되돌아보자. 진보정당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가치중립적인 것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약자의 편에 서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은 가해자를 두둔하는 잘못된 처신이라는 것은 물론 알 테고. 이런저런 인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잘못된 문화가 진보진영에도 있음을 반성하고 바로 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 평소에 우리가 무엇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조직 내부의 기풍이 달라진다. 우리 조직이 건강하려면 폭력과 억압은 멀리하고 ‘정의와 사랑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약자의 편에 서는 진보정당’이라면 너무나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그런 건강한 조직이라 믿기에 기꺼이 함께 하려한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는다’는 성서의 한 구절을 떠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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