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인수위원회

녹색세상 2008. 1. 24. 23:23
 

“부동산 유망 상품을 자꾸 발굴, 추천해 주는 것이 부동산 전문가인 나의 할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투기를 부채질한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아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죠.”


  고종완 RE멤버스 사장이 지난 2004년 7월께 한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부동산 투기 조장’의 시선에도 그는 승승장구했다. 대기업 샐러리맨에서 중개업자를 거쳐, 부자들의 부동산 컨설턴트로 이름을 날렸고, 작년 말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부동산 등 차기 주요 경제정책을 좌우하고, 큰그림을 그리는 인수위 경제2분과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것. 하지만 한달이 못가 사고가 터졌다. 자문위원 직함을 갖고, 일반인을 상대로 고액의 투자 상담을 벌여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 인수위는 뒤늦게 고씨를 자문위원에서 내쫓았고, 24일엔 사기와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동안 아무런 검증 없이 고 씨에게 자문위원 자리를 줬던 서울시와 경기도 등도 부랴부랴 그를 방출했다. 

 

  ▲ 부동산 투기자문 전문가인 고종완, 인수위의 정보를 가지고 자문료를 받고 장사를 했다.



       우리나라에서 부자를 가장 많이 만난다는 사람


  고종완 RE멤버스 사장은 40대 초반까지 평범한 대기업 샐러리맨이었다. 부산대 법대를 나와 삼성물산과 LG, KT 등에서 일하다 외환위기 때 퇴직했다. 퇴직 후 주식에 손을 댔다가 큰 손실을 본 그는 99년 잠실에 부동산중개업소를 차렸다. 하지만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고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업자들과 함께 일을 시작했지만, 수수료를 속여 입금이 제대로 안됐고 항상 적자가 났다"면서 "결국 많은 손해를 보고 접었다”고 말했다. 그가 부동산 컨설턴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2년 RE멤버스를 만든 이후부터다. RE멤버스가 주목을 끈 이유는 설립 당시 참여한 인사들의 면면 때문이다. 우림건설 회장을 비롯해 한국토지공사 단장, 감정평가사협회장 등 부동산 시장에선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인사들이었고, 고 씨는 불과 몇 년 만에 스타 부동산컨설턴트로 자리를 잡았다. 그가 이렇게 성장하게 된 배경엔 물론 언론의 역할도 컸다. 주요 신문의 부동산 지면과 방송은 앞 다투어 고 씨의 전망을 그대로 싣기 바빴고, 일부 신문은 아예 그에게 별도 코너까지 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부동산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렸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리는 한 부동산 컨설턴트는 "언론에 나와서 하는 이야기를 보면 과연 제대로 시장을 파악해서 말하는지 의심이 들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때그때 언론 입맛에 맞는 말만 하다 보니,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일부에선 아예 ‘투기만 부추기는 달변가’라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2-3년새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의 부동산시장이 폭등하면서, 그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서울시 등 주요 공공기관을 비롯해 단체나 기업들이 그를 앞 다투어 모셔오느라 바쁠 정도였다. 작년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출 범후 고 씨가 경제2분과 전문위원(부동산부문)으로 위촉되자, 부동산 업계에선 여러 말들이 나돌았다. 부동산 쪽을 취재해 온 한 중앙일간지 기자는 “현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점검하고, 차기 5년 부동산 정책 방향을 검토하는 중요한 위치에 부동산 투자자문을 해온 사람이 어떤 자문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인수위는 책임 없나?


  결국 고 씨는 인수위 자문위원으로 일하면서, 지난 15일엔 한 민간업체가 주최한 부동산 투자전망 설명회에 직접 나가 차기정부의 부동산시장 정책 방향에 대해 역설하기도 했다. 이어 자신의 회사인 RE멤버스를 통해 부동산 투자 상담 명목으로 고액의 상담료를 챙기는 등 부적절한 처신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인수위는 24일 뒤늦게 고 씨를 자문위원직 박탈뿐만 아니라 검찰에 수사까지 의뢰했다. 사기죄와 공무상 비밀 누설죄의 혐의로 형사고발한 것이다. 백성운 인수위 행정실장은 “이런 일이 빚어진데 대해 국민들께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면서 뒤늦게 사과했다. 하지만 인수위 스스로 철저한 내부 검증을 통해 고 씨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는 점에서 도덕성 논란뿐 아니라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손낙구 민주노동당 대변인도 “투기 상담으로 한 달에 2억원을 버는 사람에게 부동산 정책 자문을 받은 꼴”이라며 “결국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셈이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마이뉴스/김종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