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보육시설 확대, 이명박만 반대
민주노동당 대선 보육정책의 핵심은 국공립 어린이집을 50%까지 확충하고, 취학 전 아동에게 무상보육을 제공하여 질 높은 공보육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계, 시민사회, 민중 진영의 오랜 정책요구였다. 원칙적으로 공보육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바램이 담긴 정책이라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선거를 겨냥한 정책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유권자와 후보 사이에 이보다 더 완벽한 교환조건은 없을 것 같다.
▲ 사진제공 = 참세상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하나는 공보육에 대한 오랜 정책요구가 그다지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정당에서 뒤늦게 내놓은 ‘같은 용어지만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공보육 또는 무상보육의 변별력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평가 위에서 본다면 달성해야 할 목표는 변함이 없어도 그것을 실현가능하게 할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진보정당이 보육정책에서 견지해 나가야 할 원칙을 짚어본다.
-보육은 사회적, 보편적, 경제적 능력에 상관없이 제공해야 한다.
-보육은 적정한 수준의 질을 보장해야 한다.
-보육으로 인해 여성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런 원칙을 제시하면 아마 다른 정당들도 수용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처한 현실과 조건에서 이를 올곧게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기본방향을 정립해야 하는데, 그것은 일련의 정책을 통해서 확인될 수 있다. 그래서 위에 제시된 각 원칙에 맞는 정책의 기본방향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보육의 사회적 책임 강화는 공보육의 기초
처음 원칙은 보육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보육을 사회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재분배 원리가 작동되는 공공영역에서 보육이 제공되어야 빈부의 차별 없이 평등한 보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필요한 것은 어떤 지역에 살던 상관없이 보육서비스가 필요한 아동들에게 서비스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보육시설과 교사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상관없이 평등한 보육서비스가 제공되기 위해서는 보육서비스를 시장에서 판매ㆍ구매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 원칙들을 지켜가기 위한 정책의 기본방향은 보육의 재정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육서비스는 공공영역에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보육 여건은 이런 원칙과 정책방향이 상실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첫째, 현재 한국 부모의 보육부담은 62%로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둘째, 국공립보육시설은 전체의 5.2%에 불과하다. 이곳을 이용하는 아동은 보육시설이용아동의 10.9%에 불과한데 대기자는 59%나 된다. 셋째, 영아의 보육시설 이용률은 21%에 불과하여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려고 하는 여성들은 실질적인 어려움에 놓여있다. 넷째, 보육에서도 거대한 사각지대가 존재해서 시간 연장형 보육은 전체 보육시설의 0.01%, 장애아보육은 0.08%, 휴일보육은 0.01%만 제공되고 있으며, 심지어 농어촌보육은 이제야 현황 파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육의 사회적 책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음으로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적정한 수준의 보육의 질이 보장되어야 한다.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보육서비스 환경을 개선시켜야 하는데, 여기에는 물리적 여건과 함께 보육교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도 포함된다. 보육 서비스의 질 향상은 필연적으로 비용 부담, 즉 국가책임 강화와 결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보육이 공공영역에서 제공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서비스의 질 향상은 보육료 인상과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를 ‘믿고 맡길만한’ 곳이 없다는 부모의 하소연은 보육시설이 많아도 일정한 질을 보장하는 보육시설이 없다는 뜻이다. 목표 없는 보육의 질 향상이 아니라 ‘믿고 맡길만한’ 수준이 우리 사회가 최저한으로 보장해야 할 적정한 보육의 질이라 할 수 있다.
성 평등에 기여하는 보육이 되어야
마지막으로 보육이 성 평등에 기여해야 한다. 보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적정한 수준의 질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을 때 보육의 책임은 여성에게 귀착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것은 비단 보육에만 국한되지 않고 돌봄노동 전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구 국가들의 출산율 회복은 결국 여성을 일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해 나감으로써 얻은 것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앞의 네 가지 원칙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으면 마지막 원칙은 사실상 폐기처분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원칙이 관철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부모의 고용형태와 노동시간을 고려한 보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출산과 부모의 아동양육을 적극 지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가야 한다. 공보육 확립과 일가족양립에 대한 정책은 결국 평등한 가족을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다. 공보육이나 보육에 대한 지원만 강조하다 보면 여성을 가족에 머무르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보육정책과 함께 출산과 양육에 대한 가족정책은 서로 어울려야 한다.
이명박, 빈부차별을 보육차별로-권영길, 원칙에 충실
다음은 보육에 관한 위의 원칙과 기본방향을 토대로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비교한 것이다. 국공립보육시설 확대에 대해서는 이명박 후보를 제외한 모든 후보들이 찬성했다. 보편적 아동수당은 이인제 후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찬성한다. 국공립보육시설 확충을 반대하는 이명박 후보는 보육의 사회적 책임을 거부하는 입장으로 빈곤지역과 농어촌지역 등에 국공립보육시설을 우선적으로 설치하되 기본적인 보육수요에 대한 대처는 민간보육시설의 질적 개선을 통해서 해결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국공립보육시설에 다니는 아이는 빈곤층아이 혹은 농어촌지역 아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고 국공립보육시설과 민간보육시설간의 양극화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빈부의 차별이 보육서비스의 차별로 그대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또한 모성보호와 육아휴직제도를 강화하겠다는 의외의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한나라당 정책의 기본방향이 전통적인 가족가치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성 평등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가부장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모성보호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인 설명일 것이다. 정동영 후보의 정체불명의 아기축복바우처를 주장하고 있다. 만약, 아동수당 도입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있지만 그것을 바우처로 대체한다면 보편적 아동수당이라기보다는 출산시 조금의 지원정도에 그칠 공산이 크다.
권영길 후보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 보육의 사회적 책임과 일가족양립을 강조하고 있다. 국공립보육시설 확충의 시급성을 가장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새롭다. 산전후 휴가-육아휴직의 보편적 확대와 유급부성휴가 아버지 할당제 도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유급가족출산휴가 도입을 통해 성 평등과 일가족양립을 위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출산수당과 양육수당의 현실화 공약이다. 당장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을 여전히 여성에게 둠으로써 여성을 가족 안에 머무르게 하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육에 관한 공약은 보육료 확대 대신 국공립보육시설 확충이라는 우리나라 보육의 근본적인 문제에 정확한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진보정당 대선후보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갖고 있다. (김종건 /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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