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왜 하필이면 '노란 리본'을 달까?

녹색세상 2007. 9. 4. 18:16
  

  얼마 전 어느 인터넷 언론에 실린 기사이다. “아프간 피랍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의미의 노란 리본이 미국 대사관 근처에 걸렸다. 여성, 종교, 환경 등 78개 시민사회단체 대표 및 회원들이 8월 7일 오전 서울 광화문 미국 대사관 인근 정보통신부(KT 광화문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란 리본을 거는 행사를 가졌다.” 이 노란 리본 달기는 미국에서 직수입된 상징문화이다. 기사와 함께 노란 리본이 걸린 사진을 보며, 내내 찜찜했다. 나는 이곳 미국에서 노란 리본과 마주칠 때마다 섬뜩한 전율을 느끼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쟁 지지자들은 의례 성조기와 함께 노란 리본, 그리고 “우리의 군대를 지원하자(Support Our Troops)”는 구호를 걸고 집회나 행사를 갖는다. 2004년 미국의 대선에서 이라크 점령정책 지지자들은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며, 조지 부시 미대통령의 재선을 지원했다. 이런 까닭에 노란 리본은 미국의 반전평화운동에서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미국의 평화재향군인회가 간헐적으로 사용한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사진은 민중의 소리에서 퍼왔슴.

 

  노란 리본의 유래와 쓰임새의 변천을 알면 더욱 기가 찰 노릇이다. 이는 미국의 지배세력인 와습(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 앵글로 색슨계의 백인 개신교도)의 전통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 출발은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백인 이주가 시작된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1640-1660년) 당시 왕당파에 맞선 의회파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의 청교도 군사들이 착용한 노란 리본과 장식 띠로부터 유래한다. 이들 청교도들은 미국으로 건너와 노란색을 군대의 상징색으로 삼았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는 최전선 토벌부대가 바로 백인 기병대였는데, 이들은 짙은 파란색 제복에 노란색의 부대 마크와 견장, 망또를 걸쳤다.


  이 기병대가 즐겨 부른 노래가 ‘노란 리본을 목에 두른 여인(Round Her Neck She Wore A Yellow Ribbon)’이다. 이 노래는 한국 군대의 유행가 ‘성냥공장 아가씨’처럼 저속한 성적 표현을 담은 개사곡도 만들어져 기병대 안에서 널리 불렸다. 이를 소재로 한 영화가 1949년 존 포드 감독이 제작한 서부영화 ‘노란 리본을 단 여인(She Wore A Yellow Ribbon)’이다. 서부영화로 이름을 날린 존 웨인이 기병대의 대위로 등장한다. 그를 사랑하는 여자 주인공 조앤 드루가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온다.


  군대문화의 노란 리본에 ‘기다림’과 ‘만남’, 그리고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분위기가 덧칠되어, 일반 대중의 상징문화로 확산된 것은 1970년대 초의 일이다. 감옥에서 3년 만에 풀려 나온 죄수가 옛 연인을 찾아가고, 그 여인은 집 앞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걸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한국에는 ‘노란 손수건’이라는 글로 소개된 사연이다. 1973년 토니 올랜도와 돈이 부른 미국의 국민가요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오(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가 바로 이를 주제로 한 것이다.


  이후 1979년 11월부터 1981년 1월까지 장장 444일간 이란의 미국대사관에 미국인들이 인질로 잡힌 사건이 발생하자, 노란 리본은 미전역을 뒤덮었다. 그리고 1991년 걸프전,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2003년 이라크 공격의 순간 마다 노란 리본의 물결이 미국을 휘감았다. “적진에서 잘 싸우고, 무사히 돌아오시라”는 의미가 그 쓰임새이다. 침략 전쟁을 향해 해외로 나간 미군의 전승과 무사 귀환을 바라는 일그러진 군중심리, 왜곡된 애국주의와 맹목적인 보수적 가치관이 뒤엉킨 상징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슬람 문화권의 중동지역에서도 노란 리본의 의미는 각별하다. 더러운 이방인, 이교도에게 씌우는 표식이다. 인종적 차별, 종교적 멸시의 대상에게 가하는 낙인과도 같다. 그 기원 역시 아주 오래됐다. 7세기경 페르시아지역의 이슬람 수니파 지도자 오마르는 유대인에게 노란 리본을 팔에 차게 했다. 이런 연유로 유대인이 의도적으로 미국에서 노란 리본을 유행시키고 있다는 설도 있다. 이슬람교도에게 당했던 역사적인 수모를 되갚음 하는 표현물이라는 것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복원을 외치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니파 탈레반에게도 노란 리본은 저주의 상징이다. 탈레반은 집권 시기(1997-2001년)에 힌두교도에게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게 하고, 그들의 집 앞에는 노란 기를 걸게 했다.


  이처럼 숨이 탁탁 막히게 하는 미국과 이슬람권의 노란 리본은 당장 없어져야 할 표식이다. 한국의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을 보며, 남의 문화를 직수입하거나, 모방할 때 갖는 위험성을 돌아보게 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세상을 바꾸는 힘과 감동은 그 누구의 것을 ‘무조건 따라 하기’가 아니라, 자신의 창조력에서 출발한다는 교훈을 새삼 떠올린다. (한익수/미주동부지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