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과 인권

그거 역차별 아닙니까?

녹색세상 2007. 7. 26. 18:27
 

 

   ‘3ㆍ8세계여성대회’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동승한 어느 동지가 “이런데 오면 늘 죄 지은 느낌이 든다”기에 “남자들이 평소에 지은 죄가 많지 않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남한진보진영은 여성들의 희생 위에 서 있다’는 어느 여성운동가의 말이 떠오른다. 맞다, 나 역시 여성들의 희생을 딛고 지금까지 왔다. 사남매 대학 다 보내기 힘든 형편이라 여동생들의 ‘여상’ 진학이라는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일방적인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 형제들은 대학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꿈 많던 소녀 시절 희망을 짓밟힌 채 살아온 여동생들에게 정말 할 말이 없다. 여동생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 형제는 세상에 대한 눈을 뜰 수 없었을지 모른다.


  지금도 어머니라는 한 여성에게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직업의 특성 때문에 자식에 대한 양육을 부모님, 정확히 어머니에게 떠넘긴 채 살고 있다. 이런저런 모임에 얼굴 내밀 수 있는 것도 피눈물 어린 어머니의 희생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민주노동당의 당직 여성 30% 강제 할당과 비례 후보 홀수 배정에 대해 지금까지도 이런저런 말이 오간다. “사람이 없는 현실을 무시한 역차별 아니냐”고. 맞다, 분명한 역차별이다. 소수자를 위해 만든 특별법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역차별’을 전제로 하는 게 입법 취지의 정신이다. ‘성매매방지 특별법’은 지금까지 사회 통념을 완전히 뒤집고 성매매여성들을 ‘피해자’로 법에 명시하고 있다. 자발적이라 할지라도 그 여성들이 받는 상처와 구조적인 착취문제가 너무 심각하기에 ‘성매매피해여성’이라고 법조문에 규정했다.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남성들은 계속 ‘역차별’을 거론할 것이다.


  신혼 초 아이들 엄마와 가치관과 철학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결사적인 노력을 했다. ‘같이 공부하자’는 것부터 시작해 온갖 감언이설로 꼬셨으나 끝내 합의를 보지 못했다. 이것을 과연 ‘너의 무식함’이라고 일방적으로 돌려도 되겠는가? 아이들 엄마 역시 농촌의 넉넉지 않은 집에서 자란 탓에 남동생들의 진학 때문에 유치원 교사란 자신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다. 얄팍한 ‘운동권’물에 젖어 있었던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런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다. 성인지적관점이 희박해 청년시절 사랑에 실패해 놓고도 상대를 이해하려는 ‘의사소통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일방적인 주장과 한 수 지도 하려는 시건방을 떨고 있었으니 감수성이 뛰어난 여성이 보기에 얼마나 한심스러웠겠는가?

 

 

  스웨덴은 작년부터 상장기업의 임원에 대해 여성 40% 강제 배정을 법으로 정했다. 진보정당이라 자처하는 우리 민주노동당에 당직ㆍ공직 여성 40% 강제할당을 얘기했다면 군사독재 정권에 대항해 자신의 몸을 초개와 같이 던져 감옥행을 마다하지 않은 남성 동지들이지만 과연 얼마나 동의할 것인지 같은 남자로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적으로 가능하냐, 사람이 있느냐”는 온갖 말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여성들이 지금까지 받아온 차별에 대한 냉엄한 분석없이 ‘현실론’을 들먹이면서 유능한 남성들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거품을 물것이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정말 소수자와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해 고민하고 배려한다는 민주노동당의 활동가라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당직자 연수 때 “지역 총선거 출마자 여성 30% 강제할당은 역차별 아니냐”는 어느 동지의 말에 앞에서 거론한 “소수자를 위한 특별법이 역차별을 전제로 하는 게 기본 취지”라는 여성 동지의 답변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성매매특별 방지법이 시행되자 많은 남성들이 난리 났다. 강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발로 걸어서 온 것’인데 무슨 피해자냐고? 심지어 우리 민주노동당의 일부 활동가들 조차 ‘그런다고 성매매가 없어지느냐’는 소리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주객관적인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집권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


  지금까지 기득권을 누려온 남성들의 획기적인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여성들이 자신 있으면 국회의원 선거에 50%를 내 보내라. 그러면 양보 하겠다”고 말하는 남성들이 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여건이 성차별을 전제로 해 온 현실을 간과한 잘못된 표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해 50% 여성후보를 냈다고 한들 남성들이 민주노동당과 좌파진영의 발전을 위한 대승적인 결단을 해 양보할지 의문이다. 성차별에 대한 시각 교정과 성인지적 관점을 높이기 위한 훈련이 많아야 우리 민주노동당이라도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글을 적는 나도 지금이 편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누리는 행복과 자유가 이 땅의 절반인 여성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를 얘기하다가 수양이 부족한 내가 술잔을 깨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무리 술자리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폭력적인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상처 받았을 그 동지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전하려 한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성평등’을 말하다가 되려 폭력을 휘두른 꼴이 되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비난 받아 마땅할 짓이다. 아무리 내 주장이 옳다한들 폭력적인 방식의 의사 표현을 한 것은 전적인 내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