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우리 진보운동을 고민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십여 년 간 노동운동가들이 새해가 시작될 무렵에 “정세”를 놓고 활발하게 토론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게으른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글이 발표되더라도 그 정세 인식을 기초로 해서 노동운동의 과제와 방향이 무엇인지 제출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정세에서 제출된 과제와 방향을 과거에는 ‘투쟁 방향’이라고 말했는데, 이 투쟁 방향을 둘러싸고 사상투쟁이 벌어지고 그래서 상호 침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좋게 이야기하면 각개 약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정세를 아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경향이 짙어졌습니다. 과거에 이른바 상담소나 운동단체가 민주노총 시대로 들어오면서 무슨 이론 연구소나 정책 연구소로 바뀌었고, 이 연구소들이 주로 ‘지금 당장 실현가능한 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여서 논리적으로는 상당히 치밀하고 정교한 모양을 띠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매우 정치공학적 작업으로 가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런 경향이 10여년 이어지다 보니 요즘 정세 연구는 정세 분석이라기보다는 ‘동향 분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 매몰적, 공약적 대책들이 주로 제출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에서 정세를 연구할 때는 분명히 노동과 자본 간의 대립, 적대라고 하는 입장과 관점 위에서 적(敵)은 무엇을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하려고 하고 있으며, 거기에 맞서려면 우리는 어떤 조건에서 무엇을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지를 살핍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러한 정세 분석이 실종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한된 지면이라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겠지만 계급적 입장과 관점, 다시 말해 계급적 적대의 입장과 관점에 서서 정세를 분석하는 데 최대한 접근해 보겠습니다. 우선 계급적 적대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니까 “싸우기도 전에 지고 들어가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현실은 불변이라고 간주하고, 싸워봐야 잘하면 본전이고 비긴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싸움에 이길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지는’ 싸움이 되고 말죠.
“우리는 미제국주의를 이길 수 있다. 미 제국주의는 불패(不敗)가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는 승승장구 하고 있으며, 한국 민중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내용의 패배주의를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세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기본적인 계급적 입장, 그리고 역사적 관점, 승리의 관점을 가지고 사건을 돌아보는 자세 그런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엄밀한 사실적 근거에 입각하기보다는 다소 거칠게 얘기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첫째, 이 글이 ‘87년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제목으로 시작되는데요. 기존의 것들은 무엇이든 고정불변하지 않고 흔들리고 있음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어서 이렇게 제목을 달았습니다. 요새는 87년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를 신문지상에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노동 운동계 일각에서도 “87년 노동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를 자주 했는데 저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87년 7,8,9월 대투쟁을 겪어 90년대 초반 무렵 형성된 노동체제가 2007년까지 그대로 큰 질적인 변화 없이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93년에서부터 95년까지 민주노총으로 이행되는 그 시기를 고비로 해서 급격하게 노동체제의 성격이 변했습니다. ‘87년 노동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87년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말은 동의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지금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체제를 ‘87년 체제’로만 파악하기에는 뭔가 불충분합니다. 87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나라의 사회경제 정치적 체제가 크게 질적인 변화 없이 평탄하게 유지되어 왔다는 가정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97년 체제란 말들을 쓰기도 합니다. 97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다 알다시피 I외환위기가 있었고, 이때를 고비로 해서 신자유주의 공세, 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가 거세게 밀려왔고, 우리나라 자본주의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87년 체제, 2007년 체제라는 규정만으로는 이 지점이 갖는 중요한 의미를 담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체제라는 것을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는 차원까지는 아니고 그보다는 좀 하위의 범주로 본다고 할 때 87년 체제와 2007년 사이에는 ‘97년 체제’라는 상당히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아울러 이야기해야 옳지 않나 생각합니다. 87년 체제란 도대체 무엇인가? 87년 이전에는 군사파쇼 통치체제가 있었습니다. 언론에서 이른바 87년 체제라고 말하는 것은 군사파쇼 체제가 6월 항쟁을 거쳐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로 넘어온 것입니다. 직선제를 하고 야당 정치활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그리고 평화적인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주어진 것이 87년 체제이고 그때 노동법 개정도 이뤄졌죠.
첫 번째 선거에서는 양당의 분열로 군사독재의 계승자인 노태우가 집권했지만, 그 이후로는 군사파쇼 통치에 저항했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통치가 이루어져 왔던 것이죠. 이처럼 부르주아 민주주의 통치가 유지되어왔는데 왜 87년 체제의 수명이 다했다고 얘기하는지, 의아해 할 분도 계실지 모르겠는데 문제는 우리 사회의 주요한 세력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자계급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세력도 똑같이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으니 이제 다른 체제,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된다고 공공연히 얘기해 왔습니다.
87년 체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이지만, 그러나 한 꺼풀 더 들어가 보면, 군사파쇼 통치가 일거에 다 청산되거나 긍정적으로 청산 또는 변형된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는 아니었습니다. 87년 체제는 군사파쇼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로 굼벵이 걸음처럼 천천히 옮겨온 체제였습니다. 알다시피 70년대부터 시작된 민주화 운동이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급진화 되는 과정에서 80년 광주항쟁을 계기로 폭발적, 혁명적으로 고양되고, 마침내 학생과 소부르주아로부터 노동자 계급으로까지 확산되지 않았습니까. 그러한 상황이 이어질 경우 노동자 민중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나 사회주의적 혁명으로 전환되어 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지배세력이 수동혁명에 나서게 됩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통치로의 점진적인 이행은 바로 이 ‘수동혁명’입니다.
미제국주의가 중남미 다른 나라에서 군사파쇼로부터 부르주아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허용한 것과 동일한 시대적 맥락과 흐름 속에서 한국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노동계급을 배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 이 체제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이때까지도 여전히 노동조합은 정치 활동의 자유를 갖지 못했습니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국가 보안법이 폐지되지 않아 노동자계급이 주요한 요구를 공공연하게 표현할 기회가 제도적으로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이 체제는 노동에 대한 노골적 적대를 본질로 하는 체제일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안에서도 수구보수 분파와 자유민주주의 분파간의 날카로운 적대 또는 대립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87년 체제는 이러한 대립을 축으로 하여, 파쇼적인 잔재인 권력, 제도, 법 등이 해체되어나가는 과정이지만 한편으로는 “자본의 독재”로, 더 구체적으로는 신자유주의개혁으로 나가는 체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르주아 지배계급은 이런 얘기를 공공연히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고 생각하는가. 97년 체제의 특징적 경향은 87년에도 이미 기본적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우리 사회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공공연하게 전면적으로 나타난 것은 외환위기 사태를 통해서였고, 이를 가리켜 사람들은 97년 체제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97년 체제라고 해서 87년 체제와 전면적으로 대립적이거나 역행하는 방향성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87년 체제에서도 이러한 방향성이 내재되어 있었지만 다만 점차적으로 진행되다가 97년 체제에 들어서자 봇물처럼 터져 나온 것입니다. 김영삼 정권이 신경제니 신노동이니 뭐니 할 때부터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이 전면 도입되고 있었고, 87년 당시에도 이미 자본은 중남미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자신의 패러다임을 국가독점적인 형태로부터 신자유주의적 형태로 교체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민주화 이행 프로젝트’는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된 것입니다. 결국 87년 체제에 내장된 방향성이 IMF 사태를 통해 폭발적으로 구체화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문제는 이 87년, 97년 체제가 지금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보든,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보든 참으로 못마땅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지배층과 피지배층 모두가 불신하고, 부정하기 때문에 이 체제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체제가 장기간 지탱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두 계급이 같은 생각이지만 이 체제를 어떤 방향으로 재구성하느냐는 문제를 놓고는 생각과 대안들이 서로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2007년 대선 정세는 참으로 노동자 계급이 ‘갈림길’에 들어선 정세라 하겠습니다. 손 놓고 가만히 있다가는 2007년에는 지배층의 의도대로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고 맙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체제를 구성하려면 그 과정에서 엄청난 투쟁을 거쳐야만 합니다.
자본과 지배층은 왜 87년 체제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이를 해체시키려고 할까요? 우선 자본은 87년 체제에서 정치적 지배와 경제적 지배가 효과적으로 공모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만스러워 합니다. 왜 손발이 맞지 않는가? 우선 현재 자본이 처해 있는 조건을 봅시다. 1970년대 초반부터 자본은 이윤율의 저하로 인해 구조적인 위기를 겪었고, 30년이 더 흘렀지만 이러한 상황은 전혀 풀리지 않고 계속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서 위기를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중동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것도 여의치 않고, 2차 대전이나 월남전 당시처럼 군수경기 활황을 통해 경제성장을 꾀하려는 전략도 잘 통하지 않습니다. 세계자본주의가 구조적이고 만성적 축적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은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미제국주의는 축적 위기를 돌파하려고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략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하고 있습니다.
지금 국제적 독점자본들은 이러한 축적위기에서 벗어날 뚜렷한 대안을 전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잉축적, 과잉투자, 과잉생산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잉축적이란 뭐냐, 투자 기회에 비해 축적된 자원이 더 많다는 거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 과잉축적이죠, 그 다음에 과잉투자가 뭐냐, 투자한데 비해서, 생산되어야할 양에 비해서 시설 투자가 너무 많다는 거죠. 그럼 과잉생산은 뭐냐, 소비할 수 있는 여력에 비해서 너무 많이 생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자본의 축적이 대중의 소비력에 비해서 너무나 과잉이라는 것이죠. 신자유주의를 하면 할수록 이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집니다.
신자유주의적 방식을 통해 일시적, 부분적으로는 이윤을 높여서 축적에 성공할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는 볼 때는 소비와 과잉축적 사이의 모순이 점점 더 심해져서 그동안 이루어진 개방과 유연화 정도 가지고도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지점에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자본들이 ‘죽겠다’는 소리를 계속하는데 그 이유는 돈을 벌지 못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었는데 투자할 기회가 없고, 투자는 했는데 이윤 낼 기회가 없고, 공장을 지었는데 팔아먹을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은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향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축적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공모하고 기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서 국가란 부르주아의 집행위원회”라고 했지요? 부르주아 국가에서 국가의 존재 이유는 자본의 공동 이익에 복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들의 공통된 관심사, 이해관계를 잘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자본주의 국가, 자본주의 정치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은 현재의 통치체제가 그러한 자본주의 정치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준다고 보고 있으며, 따라서 이 통치체제를 허물고 자본의 이해와 요구에 잘 복무하는 체제로 재구성하자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보기엔 정말 너무 심할 정도로 노동을 배제하고 자본의 이해관계와 요구에 복무하고 있지만,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달리 보이겠지요. 자본은 분단된 이 땅에서 노동당이라는 이름을 버젓이 내건 정당이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10석에 가까운 의석을 확보하고, 날마다 텔레비전에 나와서 토론을 벌이고, 구청장에 당선되고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히 못마땅할 겁니다. 이 땅의 수구적, 천민적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겠지요. 자본은 지금 남한 노동계급의 힘이 미약하고 개량적이긴 하지만 정말로 노동자들이 단결한다면 브라질처럼 집권도 하고 차베스처럼 사회주의하자고 할 가능성이 잠재적이지만 매우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노동계급을 확실히 짓눌러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민주와 독재의 대립 구조를 없애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대로 놓아둔 상태에서는, 즉 부르주아 양당제라고 하더라도 이 구도가 계속 관성적으로 남아있는 상태에서는, 정략적, 정파적 이유로 인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다가 자본가 계급 전체의 이해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것입니다. 민주와 독재의 대립 구조 아래서 자본가 계급이 갈등하고 대립할 가능성은 두 가지 이유에서 발생합니다. 하나는 정통성의 문제입니다. 부르주아는 노동자 민중을 지배할 때 자신들이 역사적으로 옳은 일을 해왔다고 주장함으로써 정통성을 누리려고 합니다. 이른바 헤게모니에 입각해 도덕적 우위를 주장하면서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인데 이 부문이 훼손된다는 겁니다. 민주와 독재의 싸움 속에서 민주가 독재를 계속 공격하면 그러한 빌미를 준다는 것이지요.
최근의 예를 들자면, 노무현을 좀 더 살려놔야 되는데 노무현을 막 흔드니까 노무현도 화가 나서 자기도 살아 보겠다고 내놓은 것이 과거사 카드입니다. 유신시대 때 긴급조치 판사들. 보수적, 수구적 판사들 대다수가 박정희 앞잡이 노릇하면서 긴급조치를 반대하는 노동자, 학생, 시민들을 고문하고 탄압하여 죄인으로 만들고 했죠, 나중에는 아예 막걸리 반공법으로 멀쩡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만들고 그랬죠. 과거사 진상규명은 그들에게 아주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이 땅 부르주아들의 역사적 죄상이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친일과 분단에서부터 파시즘까지 모든 뿌리를 파헤치고, 정경유착에서 뇌물수수, 차떼기당까지 계속 이어지면 부르주아들의 정통성이 무너지게 됩니다. 정통성이 무너지면 당장에는 부르주아 민주파가 유리할 것 같지만 길게 보면 누가 유리해지겠습니까? 우리에게 유리하죠. 그래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이행했으니 ‘이제는 그만하자’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정당성의 문제입니다. 대립 구도가 지속되니까 민주 세력이 독재를 공격하면서 재벌문제, 사학문제를 계속 공격합니다. 이 땅에서 존재해야 될 이유가 없는 재벌이 세습을 하고, 무리한 투자를 하고 투기를 합니다. 사학도 자본이 지배합니다. 이러한 부르주아적인 질서에서 핵심적인 기반들, 이런 지점에 계속 공격이 가해지면 현 지배계급의 정당성이 훼손된다는 것입니다. 부르주아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비정규직 법안을 빨리빨리 통과시켜야 하는데, 사학법 때문에 자기들끼리 싸움질 하느라고 1년 늦어졌죠, 그 뿐입니까? 비정규직 통과시켰으니까 내년에는 근로기준법 다시 개악해야 하는데 눈치 보느라고 못 하고 있습니다. 한미 FTA도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하는데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자본은 지금 당장이라도 축적의 위기 속에서 자기의 이해에 필요한 정책들을 추진해야 할 입장인데, 정작 정치가 그들의 이해를 효과적으로 보호해 주지 못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정치가 아니라 ‘화합의 정치’를 하자는 말이지요. 노동자가 알아야 할 것은 화합은 곧 노동 배제라는 사실입니다. 노동을 배제하는 가운데서 부르주아 정파들끼리 화합하자. 화합만 하면 되느냐? 경쟁도 해야 되죠. 대권을 놓고서 경쟁을 하더라도 정책 경쟁을 하자, 이 정책은 어떤 정책이냐, 확실하게 자본축적을 보장하는 정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경쟁하자는 것입니다. 분배가 아니라 성장을 중심으로 경쟁하자는 거죠. 선거에서도 그런 점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미 자본 내에서는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들이 작년부터 계속되어 왔고, 자본은 금년 대선을 계기로 해서 집중적으로 이런 질서를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음모론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배계급들이 자기들이 추진하는 일들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언론에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사회과학적으로 추적하면 충분히 예측 가능합니다. 그리고 언론에 노골적으로 다 나오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도 주요한 내용은 이미 다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명박과 노무현이 숙덕숙덕 하고 있다. 그거 다 무엇입니까. 보수 대화합하자는 얘기입니다. 왼쪽에서는 이른바 자유주의 개혁파가운데 혁신적인 부분이 주도하고, 오른쪽에서는 수구적인 부분이 주도해서 둘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태가 더 이상 지속된다면 지배계급에 불리하고 노동자와 민중에게는 매우 유리한 정세가 조성될 것이라는 판단이겠지요.
지배 수구우파 측은 가능하면 성장주도론을 중심으로 당파나 이념이 같은 분파들끼리 뭉치더라도, 가급적 수구의 원죄가 적은 부분이 당선되는 것이 보수대화합의 정치를 하는데 더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을 할 것입니다. 보수 자유주의적인 연합 측도 그렇게 화합적인 방향으로 정체성을 재구성해서 경쟁을 하게 된다면 수구우파와 자유주의 우파 양자 가운데 어느 한 분파가 집권을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막아야할 그런 정도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양자는 선의의 경쟁과 화합을 통해 공동의 이해관계를 방어하려는 점에서 깊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배층은 87년 체제를 무너뜨리고 자본의 입맛에 더 부합하는 통치체제로 전환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97년 IMF 사태를 통해서 신자유주의 체제를 단행했듯이 새로운 통치체제를 구성하고 미 제국주의가 주도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한 번 더 깊숙이 질적 체계적으로 편입해 그 안에서 좀 더 높은 위계와 지위를 차지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이것이 지배층 모두가 동의하는 상황이다. 지금 열린 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나 실제로 추진하는데 있어서는 다를 바 없다. 한겨레신문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충분히 선의의 경쟁과 화합의 체제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에 노동자계급은 또 다시 87년의 계급 전쟁에 못지않게 심각하게 ‘배제당하는 상황’을 맞지 않겠느냐 하는 염려를 지울 수 없습니다.
지배계급도 나름대로의 계산 하에서 87년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흔들고 있지만, 우리 노동자 민중의 입장은 그럼 뭐냐? “87년 체제, 이것을 그대로 붙들고 있자.”는 입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노동 안에서 관료화된 부분에서는 87년 체제를 더 붙들고 갔으면 하고 바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체제를 붙들고 가다 보면 어쩌면 그 틈새에서 민주노동당이 200만표, 300만표를 얻게 되고 그 과정에서 국회의원이 10명, 20명, 30명이 되고 장관, 시장도 나올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많은 부분들, 민주노총 상층의 많은 부분들이 대체로 현재의 87년 체제가 유지되는 쪽을 선호하고 있다고 봅니다. 2007년 체제, 자본이 만들어 가려는 체제에 비하면 87년 체제는 분명히 약간의 틈새가 있고 기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민주 대 독재가 싸우고 있고, 그 틈새에서 노동자 민중세력에게 일정한 입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반한나라당 전선’을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열린우리당 내부나 부르주아 내에서 반한나라당 전선을 얘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노동자 세력 안에서 반한나라당 전선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87년 통치 체제를 지속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대선에서 열린우리당을 밀어줘서 팽팽한 보수 양당구도가 만들어지고 대립이 유지될 경우 노동자 세력도 그 틈새에서 일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기대를 하는데, 그 기대는 매우 주관적인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자본의 이해 때문에 ‘부르주아 세력들이 그렇게 가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 부르조아 세력들이 그렇게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대다수도 그 방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노동자계급은 87년 체제 자체를 싫어합니다. “87년 체제하에서 보수 양당이 똑같이, 집권여당, 야당 할 것 없이 힘을 합쳐서 노동자 민중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착취와 수탈을 계속하는 바람에 사회 양극화가 깊어졌다. 민주노동당이 있어봤자 민주와 독재 체제하에서 민주노동당, 노동자 세력은 사실은 열린 우리당의 2중대 밖에 안 된다. 강조점의 차이 정도 밖에 안 된다.” 결국은 2중대 밖에 못 되는 이 힘으로는 사회 양극화를 막아내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현상적으로는 대다수 노동자 민중, 고통 받는 노동자 민중이 지금 열린우리당 지지로부터 벗어나서 한나라당 지지로 가고 있지만 한나라당이 노동자 대중의 이해를 충족시켜 줄 거라고 믿어서 그런 게 아니지요. 고용기회를 만든다거나 실제 소득을 향상시키는 데서 일종의 성장주의 이데올로기가 훨씬 피부에 와 닿는다는 점과 더불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의 2중대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에서 떨어져 나간 일부가 결국 한나라당으로 가 버렸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가 떨어졌다고 해서 우리 민중들이 “87년 체제가 좋다, 그대로 유지하자”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노동자 민중이 심하게 동요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른 대안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는 것이지 민중들이 87년 체제, 혹은 현재의 체제에 긍정적인 동그라미를 그려주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태가 이런 정도로까지 불안정하게 흔들리다 보니까 제가 볼 때는 개혁주의의 기수였던 권영길 의원까지도 이번 민주노총 선거 때 대의원대회 장소를 지키면서 기자단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한국사회 변혁의 중심에 민주노총이 서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할 때 한국사회에 희망은 없다, 다시 한 번 한국사회 변화의 중심에 설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조합원 대중과 새로운 집행부에게 촉구하고 싶다” 민주노총이 변혁의 관점을 가지고 이른바 87년 체제를 해체시키고 변혁이 이루어지는 체제로 이행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자본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2007년 체제가 재구성된다면 노동자 민중은 희망을 그릴 수 없다. 그렇다고, 87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해도 계속 나빠질 수밖에 없다. 오직 대안은 이 체제를 노동자 민중의 이해에 맞는 방향으로 변혁적으로 재조정하는 수밖에 없다!” 상식이 있는 노동자라면 다들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냉전이 끝나면, 미제국주의가 혼자 설칠 것이다. 냉전체제는 미소 양대 체제인데 한쪽이 무너졌으니까 이제는 미제국주의가 유일패권으로 전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미국의 유일패권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도전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이 대중들은 물론이고 운동하는 사람의 머릿속에도 깊이 각인되어있지 않나 싶습니다.
월러스틴 같은 사람은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난 다음에 탈냉전 시대가 오면서 동시에 미국도 붕괴되고 미국의 패권도 무너진다고 내다 봤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십 몇 년 동안 미제국주의는 엄청난 노력을 했고 아주 무모한 공격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한 공격의 일환으로 금융세계화와 IMF를 앞세운 파국 전략을 통해 다른 나라의 자본시장, 상품시장을 적극 개방하게 만들어 자본과 화폐이 지배하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를 만들어내고자 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는 듯 하다가 결국은 디플레이션 위험으로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저는 1920년대와 30년대 같은 대공황의 위험성이 높아지자 결국 워싱턴 컨센서스(합의)가 붕괴하고 네오콘 컨센서스가 득세했다고 봅니다.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정말로 큰 사고가 나고 세계 공황의 위험이 생길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이라든지, 일본이나 중국이라든지 또 다른 자본주의 강대국이 성장해서 유일패권 체제가 붕괴되고 다극화 체제로 갈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런 복합적 이유 때문에 미제국주의의 지배계급은 워싱턴 컨센서스를 포기하고 네오콘으로 방향을 돌린 것입니다. 네오콘 또한 하나의 컨센서스, ‘지배계급 내의 합의’이지 이것이 네오콘 분파만의 분파적인 견해는 아니라고 봅니다. 네오콘이 앞장서서 이라크를 침략했다지만 힐러리까지도 이라크 침공 당시에 동의를 해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은 아프카니스탄을 치고 이라크를 쳐서 전쟁을 통한 유일패권 유지를 추구했지만 결국 이라크 민중의 강력한 저항에 의해서 자타가 다 공인할 정도로 실패해 버렸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지배계급은 지금 어떻게 질서 있게 후퇴하면서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느냐 하는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내용 중 국제 정세에 관련된 부분은 ‘르몽드’ 한국판을 많이 인용했습니다. 여유가 있으면 한두 권 정도씩 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잡지는 좌파 잡지는 아니지만 세계정세를 상당히 객관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지적 풍토에서는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중동 전역에서 미국이 실패하고 있다는 것, 이라크에서만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레바논에서도 실패했고, 시리아에서도 실패했고 또 이란에서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무리하게 전쟁을 계속하자는 입장과 질서 있게 후퇴하자는 입장을 둘러싼 논쟁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악조건에 놓인 미국이 일방적인 태도를 상당히 누그러뜨림으로써 북미6자 회담도 현재 약간의 진전 가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구촌 전체로 볼 때 냉전이 해체된 뒤로, 미국 중심의 패권이 질서 있게 해체되었어야 하는데, 미국이 워싱턴 컨센서스를 통해서 한편으로는 경제 금융력,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적인 방법을 통해 유일패권을 유지하려고 함으로써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결국 현실적인 결과는 미국이 중동에서는 군사적으로 패배하고 중남미에서는 정치적으로 패배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남미 전체에서 반미 바람이 불고 있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이제 반미 바람은 중남미 전체를 이미 다 휩쓸었고 작년부터 서서히 불어오는 바람은 반미를 넘어서 사회주의 바람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차베스가 21세기 사회주의를 하겠다고 선언한 이후로 중남미 국가들 가운데 볼리비아나 에쿠아도르처럼 민중적 역량이 확보되어 있는 나라들은 이제 하나둘씩 사회주의를 명시적인 사회변화, 진보, 변혁의 목표로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도 미제국주의가 예전처럼 그렇게 마음 놓고 손을 쓰지 못합니다. 비행기는 마음 놓고 중남미 대륙을 자기 땅처럼 날아다니고 있을지 모르지만 거기다 핵무기를 쏠 수도 없습니다. 정규군을 투입하자니 이미 모병제로 전환한 마당에 병력을 모으기도 쉽지 않고, 중동에 쏟아 부은 병력을 철수시켜 중남미에 투입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미국은 점점 여러 가지 제약 조건, 다시 말해 쿠데타 사주라든가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을 통해 제압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이게 되었고, 불가피하게 사태가 흘러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긴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미제국주의는 탈냉전의 시대에 경제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질서 있게 자신의 패권적 지위를 해체시키고 다극화되는 국면으로 갔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탈냉전적인 시대정신에 맞게 각 민족의 자주성이 일정하게 인정되고, 각 나라의 민주주의가 향상되며, 인권이 보장되는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행해가는 것이 순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정세는 미 제국주의가 무모하게 그러한 추세를 정면으로 거슬렀기 때문에 역풍을 맞이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한에서도 노동과 자본의 계급투쟁에서 매우 유리한 정세임이 분명합니다. 남북간의 전쟁 위험이 상존하지만 그것이 완화될 가능성이 높고요. 남한에서도 지배계급들이 매우 움츠러들 가능성이 많습니다.
계급투쟁에서 “기 싸움이 절반”이라고 본다면 무리일까요? 그동안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로 노동세력과 진보세력이 기가 꺾이고 수세에 몰리다 보니까 말로는 사회주의를 거론하지만 실제로는 경제주의, 조합주의 밖에 못하는 정파들의 일그러진 모습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정세가 세계적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또한 국내정세를 보자면 자본은 보수대화합체제로 가는 과정에서 노동을 배제하고 신자유주의 파시즘으로 이행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의 주관적 이해일 뿐 반드시 객관적이거나 필연적인 추세는 아니라고 봅니다. 노동자들 다수가 열린 우리당쪽에서 한나라당쪽으로 가고 있지만 그것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은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정말 진취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비전과 실력과 도덕성을 갖춘 정치세력이 나타나서, 민중을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고, 민중과 더불어서 민중을 주체로 해서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분투한다면 동요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 민중들이 기꺼이 그 방향으로 옮겨올 것입니다.
정세의 흐름이 100%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바깥에서의 정세를 보면 종래에 비해서 매우 유리한 방향으로 정세가 조성되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국내적으로 우리 노동운동은 어쨌든 이쪽이든 저쪽이든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보장은 없지만 가능성은 열려있는 가운데 기로에 서 있는 것이지요. 우리 노동운동의 방향과 과제는 수학공식이나 물리 법칙처럼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틀에 박힌 방식으로 움직이면 다 잘 될 것이라는 보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정세는 주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깊이 새겨야 할 때입니다. 자본이 내놓은 방향으로 선택을 했을 때 어떤 여지가 주어져 있는가, 여지가 주어져 있다면 그쪽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 반한나라당 전선을 가지고는 우리 노동자 민중에게 득이 될 것이 거의 없습니다.
단, 유일하게 생기는 것이 있다면 노동운동의 상층부, 고참들, 나이 40이상의 386이상 세대들에게 출세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겠지요. 이번이 아니라면 그들이 언제 정치권에 진입해 그것도 군소 정당이 아니라 거대 양당의 한 부분으로 흡수되어 그 밑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고 장관도 할 수 있겠는가. 이번이 ‘막차’라는 말입니다!! 이제 보수대통합 체제 한번 할 때까지는 기회를 주겠지만 통합체계가 구축되면 그 다음부터는 노동운동 출신들, 민중 출신들한테 줄 자리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정치권에 들어갈 경우 야당이 되던 여당이 되던 다소 친노동적인 정책이나 입법을 하려고 노력하겠지만 당론에 의해서 그런 것들은 대부분 다 부결될 것이 분명합니다. 아마 고충 처리 정도는 해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공무원 노조를 합법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선택의 기회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한 번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변혁의 깃발을 들고 계급적으로 위력적인 정치세력으로 도전하는 길 외에 노동자 민중이 이 상황 속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의 지금 실력이 저것 밖에 안 되는데 무슨 재주로 보혁 정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에쿠아도르에서 코레아가 대통령이 될 줄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가. 그 이유는 그가 노동자 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정확히 받아 안고 진정성을 가지고 나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우리 노동자 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정확히 받아 안아서 진정성을 가진 어떤 세력이 조직되어 움직인다면, 딱 부러지게 몇 퍼센트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땅의 정치지형을 보수와 혁신, 노동과 자본의 대립구도로 만들어내는 것까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배계급은 지금 ‘밥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자기들끼리 판을 꾸려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물론 막판에 가서는 주고받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 과정이 매우 혼란스럽고 복잡하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노동자 민중 세력이 그 공간을 뚫고 들어가서 자기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얘기도 되는 것입니다.
민주화운동 20년 했고, 노동운동 20년 했는데 왜 아직까지도 보혁구도를 만들어 낼 자신이 없는가? 왜 집권할 자신이 없느냐? 왜 변혁할 자신이 없느냐? 이번에 제대로 도전하면 이번에 안 되더라도 다음번에 할 수 있고 다음번에 안 되면 삼수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못 된다고 생각하면 다음번에도, 그 다음 번에도 못 한다고 봅니다. 이번에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하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도전한다면 이번에도 가능성이 100%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열 달이, 아기를 임신해서 낳을 수 있는 긴 시간이 우리에게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설사 준비가 늦어서 변혁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뚜렷이 다른 정치지형, 자본이 생각하는 정치지형과 다른 정치지형과 정치체제를 만들고자하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온 몸을 던져서 도전한다면, 설사 10%, 15% 지지율 밖에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다음번에는 40%, 50%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70%가 될 수 있으며, 변혁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언제나 때가 있습니다. 때를 놓치면 기회는 그렇게 자주 오지 않습니다. 2007년 정세가 우리 노동자 계급이 그 동안 벌여왔던 노동조합운동, 민주노조운동, 노동정치의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한계와 오류도 있지만 운동의 그 성과적 측면을 기초로 해서 그 부정적인 측면을 과감하게 혁신하고 그리고 진취적으로 창조적으로 재구성해내고 그 광범한 역량들을 집결해 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은 계급대중을 동원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주체로 세운다면, 교조적으로 패권적으로 하지 않고 노동운동이 정말 부르주아들이 화합을 외치는 것 이상으로 단결한다면 정녕 우리에게도 승리의 기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2007년 정세에 노동조합운동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2008년 정세도 그렇습니다. 계속 수세적인 상황에서 지키기에 급급할 것인가? 전체 노동운동으로 보면 그동안 노동운동을 민주노조운동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관점도 혁신해야 합니다. 노동운동은 노동자 정치운동과 노동자 사회운동과 노동자 노동조합운동, 이렇게 세 축이 있고 개별 자본과의 싸움에서 수세에 몰리더라도 총자본과의 싸움에서는 우리가 공세를 펼 수도 있습니다. 노동자의 정치적 진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총자본에게도) 노하우가 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과감하게 진출하면 그들이 한동안 헤매고 우왕좌왕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한 약점을 잘 활용해서 우리가 매우 창조적이고, 그리고 현실적인 방책을 가지고 정치투쟁을 벌인다면 분명히 지금까지의 수세를 공세로, 계급 역관계의 수세를 공세로 반전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므로 2007년 대선투쟁, 이 문제를 우리가 냉소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과제로 받아 안고, 다 같이 어떻게 이 대선투쟁을 정말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잘 해낼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목전에 놓인 투쟁의 최대 과제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충정에서 한 말씀을 덧붙입니다. 그동안 우리 노동운동이 ‘정파 갈등’으로 많이 힘을 뺐습니다. 앞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이제는 지배세력과의 한판 싸움을 앞두고 ‘단결의 기풍’이 높아져야 할 때입니다. 원칙 없이 덮어놓고 모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노동자계급이 주체로 나서서 싸운다는 대원칙을 확실히 하고, 다른 사람들과 시시비비를 가릴 것은 가리되, ‘정파 경쟁’을 우선에 놓는 게 아니라 지배세력과의 싸움을 1순위에 놓고, 바른 길을 가자는 말입니다. 상대방의 허물을 탓하기 전에 내 허물을 먼저 허심하게 드러내야, 우리는 서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이 커다란 싸움의 과정에서 정파의 벽도 허물 수 있습니다. 우리 용기를 냅시다! 시급하게 우리의 ‘기’부터 살립시다! (인간해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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