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멀리서 본 한명숙

녹색세상 2010. 1. 4. 21:39

저는 노무현 정권 시절 총리를 지낸 한명숙이란 분을 잘 모릅니다. 오히려 부군인 박성준 선생님은 책을 통해 조금 아는 정도지요. 늦게 신학을 공부를 해 학위를 받고도 목사 안수를 거절한 소탈한 분입니다. 신학자로서 대단한 업적을 남긴 분이기도 하죠. 두 분이 육십 중반이 넘었으니 제게는 ‘큰 형님 큰 누님 뻘’ 되는 분입니다. 여성운동을 하다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란 정도 밖에 모르니 그 분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없지요. 오늘 문병옥이란 분이 블로그에 쓴 ‘가까이에서 본 한명숙’이란 글을 보고 부부가 소탈하고 ‘된 사람’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12월18일 서울 마포구 노무현재단에서 검찰수사관들에게 체포돼 연행되고 있다. 한 전 총리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5만달러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렇지만 문병옥 님의 글과 견해가 너무 달라 평소와 달리 이면지에 몇 자 적지도 않은 채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국회의원에다 장관을 역임하고, 국무총리까지 지냈으니 한명숙은 그냥 개인 한명숙이 아니라 ‘정치인 한명숙’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판사는 재판으로 말한다’는 말처럼 정치인은 그가 행한 정치행위를 보고 판단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60대 중반의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소탈하고, 오래도록 같이 지낸 아랫사람들에게 하대를 하지 않고 존칭을 쓰는 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무척 닮은 것 같아 보기 좋군요.

 

 

저는 개인 한명숙을 잘 모르는 게 아니라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치인 한명숙은 직간접적으로 겪어 보았기에 조금은 압니다.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면 권력의 실세 중의 실세임에도 불구하고 ‘소득분배론’의 일인자인 이정우 박사가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경제비서관이었던 정태인 박시 역시 ‘매우 위험하다’며 반대한 ‘한미FTA협상’을 노무현 정권은 밀어 붙였습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 마저 협상장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도록 막는 초헌법적인 짓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한명숙 국무총리가 어떤 처신을 했는지 묻는다면 어리석은 질문일까요?

 

평택에 한반도에 50년 이상 주둔할 목적으로 구축하려는 미군기지 확장을 이 땅의 평화를 사랑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습니다. ‘미국의 전쟁기지로 우리 땅을 내어줄 수 없다’는 사람들을 몰아내는데 경찰 병력이 모자랐는지 군병력을 투입해 진압작전을 했습니다. 그것도 수도군단 예하의 특공여단을 비롯한 헌병특경대 등 특수부대를 동원해 국민을 향한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 ‘여명의 황새울’ 작전을 감행할 때 한명숙은 국무총리였습니다. 총리의 서명없이 작전이 가능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 때 ‘똑 같은 것들’이라는 욕을 수 없이 뱉으며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던 적이 있습니다.

 

▲ 2009년 5월 26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은 한승헌 전 감사원장이 조문을 마치고 한명숙 장의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우측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정권의 초기 국방장관을 지낸 이상희란 자가 합참의장으로 작전을 기획하면서 ‘총기무장을 해서 밀어 붙이자’는 걸 국방부에서 ‘큰 일 난다’며 총기 휴대는 뺐지만 계엄이나 전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군 병력을 투입해 진압한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작전에 한명숙 총리가 ‘군 병력 투입은 안 된다’며 대통령과 한 바탕 할 줄 알았습니다. ‘여성운동을 하며 여성부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는 건 큰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권력의 속성을 명확히 알았습니다.


개인 한명숙은 소탈하고 좋은 사람일지 모르나 정치인 한명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 붙이는데 반대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이라크 파병에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속성이 아니라 권력이 주는 달콤한 맛에 빠져 있었다는 증거라 생각합니다. 한명숙이란 분은 단순히 60대 중반의 초로의 할머니요 좋은 개인이 아니라 정치인이니 그가 행한 정치적 결단과 선택을 보고 판단하는 게 옳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좋은 사람이라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치인 노무현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비정규직 도입을 강행하는 고집을 부렸습니다.


요즘 이명박 정권의 주구노릇을 하는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압박하듯이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 증거도 없이 마구잡이 수사를 하며 탄압을 하고 있습니다. 혐의 사실을 함부로 흘리며 조선일보는 받아쓰기에 정신이 없는 상식 이하의 짓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의연하게 대처하는 한명숙 전 총리의 모습에 ‘용기 잃지 마시라’는 말씀을 전하며, 검찰의 탈법에 대해 분노를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이 힘든 처지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한명숙 그 분은 개인이 아닌 정치인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추 신: 개인이 아닌 정치인 한명숙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판단이니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정권과 정치인에 대한 평가에 원칙을 빼 버리고 현실론만 들먹이면 꼼수 말고는 다른 말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밤은 길어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현실을 뛰어넘는 고민을 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결코 발전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