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영동은 전북 무주와 경북 김천과도 가까운 곳이라 3도 지방의 말이 뒤섞인 곳이라고 합니다. 낯선 지역이라 편의점에 들러 ‘깨끗한 여관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새 건물이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건축마감재에 배인 냄새가 코를 찔러 비싼 숙박비가 아까워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이미 돈은 냈으니 물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잤습니다. 알레르기성비염 때문에 고생하는데 이런 일까지 겹쳤으니 어쩔 수 없지요.
영동에서 추풍령을 넘으려면 황간을 지나야 합니다. 영동을 지나는 4번국도는 영동에서 황간까지는 예전 길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옆으로 확장공사는 열심히 하고 있지요. 말이 추풍령이지 이젠 별로 가파르지 않아 바람만 불지 않으면 자전거로 그냥 갈 만한 곳입니다. 추풍령을 넘어서면 김천까지는 거의 내리막길이라 가볍게 밟아도 잘 나갑니다. 그런데 강풍이라는 자전거 최고의 강적을 황간에서 만났습니다. 거창에서 약속을 했는데 불청객이 가는 길을 시샘하니 황당하기 그지없더군요. 거기에다 영동이 이름값을 한다고 체감온도는 얼마나 떨어지던지 난감하더군요.
고민 끝에 김천행 버스에 자전거를 실자는 ‘고뇌에 찬 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천에 도착해 시간을 보니 여유가 없어 거창행 버스에 자전거를 바로 실고 거창으로 갔습니다. ‘조선일보 없는 청정지역 만들기 운동’을 고민하는 반가운 분들을 만나러 간다는 설레임이 그 동한 쌓인 피로감도 다 잊게 했습니다. 문제는 거창에 도착해 자전거가 또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시내 주행용 자전거로 전국 오지를 돌아다녔으니 탈이 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죠. 사는 것 보다 수리비가 더 많이 날아간 지 오래지만 정이 든 자전거라 다시 고쳤습니다.
오토바이도 중고도 1,000킬로미터 넘게 달린 경우가 별로 없다고 하는데 자전거로 2,100킬로미터 넘게 달렸으니 성한 게 오히려 이상하죠. 다음 자전거 일주를 대비해 장거리용을 하나 장만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장거리 주행에는 아무리 다리가 튼튼해도 차체가 좋은 자전거라야 고생을 덜 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세세한 고장의 원인을 찾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에도 일일이 확인해 가며 고장의 원인을 발견해 수리해 주시더군요. 추운 날씨에 별로 돈도 안 되는 일임에도 정성을 다해주신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달빛님이 알려주신 ‘동래갈비’로 향했습니다. 읍사무소 뒤에 있는 동래갈비는 거창의 민주시민들이 찾는 곳으로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거창의 민주시민들 모임은 거의 동래갈비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자비선님과 아이들이 같이 오고, 바람돌이님, 솔샘별님, 아리한뜨님 등 행언연 회원들이 반가이 맞아주셨습니다. 오는 분들이 서로 아는지라 자연스레 같이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군임에도 민주시민들이 많다는 건 오랜 세월 민주의 씨앗을 뿌린 분들이 있기 때문이죠. 대도시인 대구와는 분위가가 달라 샘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달빛님이 숙소를 잡아 주셔 짐을 풀고 2차 장소인 막걸리 집으로 향했습니다. ‘조중동 불매’라는 실현불가능한 과제보다 옥천처럼 ‘조선일보 없는 청정지역’을 만들자는 운동에 많은 분들이 뜻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대회가 어렵다면 조선일보 반대 자전거 타기 대회’라도 하는 게 어떠냐고 건의를 했습니다. ‘행동하는 언론소비자 주권연대’ 차원에서 장기적인 과제로 만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들판을 태우듯’ 우리들의 작은 노력은 분명 결실을 맺으리라 믿습니다. (2009. 12. 15일 자전거 일주 42일 째)
추 신: 몇 년 만에 밀린 송년회 다닌다고 농땡이를 쳤습니다. 써 놓고는 늦게 올려 죄송합니다. 사진기가 엉성한 것이라 제대로 찍힌 사진이 없습니다. (서울 송년회 때는 괜찮았는데....) 다음 자전거 일주 때는 튼튼한 놈으로 장만하겠습니다. ^^ 영동과 황간에서 찍은 사진을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 한 장도 못 올립니다. 정성을 다해 고쳐 주신 자전거점은 거창읍 사무소 부근 코렉스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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