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주권운동

언론노조 앞에 다시 다가온 높기만 한 암벽

녹색세상 2009. 1. 17. 09:10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지난 임시국회에서 언론악법을 날치기 처리하려는 걸 막기 위해 벌인 전국언론노동조합 1차 총파업 투쟁이 막을 내렸다. 여야는 재벌과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에게 방송뉴스를 넘기는 걸 뼈대로 하는 신문·방송법 개정안 등 쟁점이 큰 언론관련 6개 법안을 시한을 두지 않고 (빠른 시일 내에) 합의 처리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불끈 쥐었던 두 주먹이 풀렸고, 잔뜩 찌푸렸던 미간이 펴졌다. 얼었던 마음이 녹았고, 팽팽했던 긴장감이 풀렸다. 주위에선 ‘잘 싸웠다’, ‘고생 많았다’는 격려가 밀려들었다. 심지어 “승리를 축하한다”는 축하 세례도 쏟아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언론노조가 살짝 들뜬 것도 같다.

 

 


문득 곱씹어본다. 우리가 정말 이긴 걸까? 물론 언론악법이 ‘전광석화’, ‘속도전’으로 후다닥 처리되는 걸 막은 것은 이번 총파업 투쟁의 최대 성과다. 언론악법뿐 아니라 금산분리 완화, 집회 마스크 착용 금지, 휴대전화 감청 합법화 등 다른 MB악법의 위험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이에 저항하는 여론을 이끌어낸 것 또한 큰 성과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 싸움은 끝난 게 아니다.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을 뿐이다. 다시 곱씹어본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눈을 감으니 언론노조가 넘어야 할 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 그 산들 가운데 눈에 띄는 네 개의 봉우리를 짚어본다.


첫 번째 봉우리, YTN 사태 정상화다. 1차 총파업 투쟁 마지막 날인 지난 1월 7일 언론노조 조합원 1천여 명은 YTN 사옥을 둘러싸는 인간띠를 이었다. 이명박 정권의 낙하산 구본홍씨가 물러나도록 압박을 하는 동시에, 174일째 구본홍 저지 투쟁을 벌이던 YTN 조합원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간 언론악법 저지에 온힘을 쏟느라 YTN 투쟁에 큰 힘을 싣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YTN은 여전히 언론장악 저지 투쟁의 최전선이다. 지금부터 이 최전선 투쟁에 다시 힘을 쏟아 공정방송을 지켜내야 한다.


두 번째 봉우리, 조중동 패악 뿌리 뽑기다. 조중동은 언론악법 관철을 위해 갖은 왜곡보도로 도배했다.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해 체통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달려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조중동의 왜곡보도가 위력을 발휘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제 국민들은 저들의 추악한 속내를 너무나도 잘 안다. 지난 촛불항쟁을 거치며 조중동의 정체를 속속들이 알아버린 민주시민들은 더 이상 속지 않지만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위기에 몰린 조중동은 더욱 노골적으로 ‘혹세무민’하려 들고 있다. 되레 미네르바에 ‘혹세무민’의 딱지를 덧씌우려는 게 대표적이다. 시민들이 조중동에 현혹되지 않도록 언론인으로서 사명을 다해야 한다.


세 번째 봉우리, 언론악법 완전 폐기다. 한나라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또 다시 언론악법 처리를 강행하려 할 것이다. 합의를 시도하는 시늉만 잠깐 내다 수적 우위를 내세워 날치기 처리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이 요즘 추진하는 국회폭력방지법은 야당 의원들을 꽁꽁 묶기 위한 포석이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대대적인 ‘혹세무민’ 홍보전을 전개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1차 총파업 투쟁에서 작은 승리를 일궈냈듯이 2월 이후 있을 투쟁에서도 언론노동자들이 똘똘 뭉친다면 더 큰 승리를 따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배후에는 든든한 국민들이 있기에 더욱 힘이 난다.


네 번째 봉우리, 언론인으로서의 소명의식 다시 세우기다. 조중동은 언론노조 파업을 두고 “밥그릇 때문”이라고 공격했다. 맞다. 우린 밥그릇을 위해 파업했다. 하지만 이 밥그릇은 한나라당과 조중동처럼 자기들 배만 불리기 위한 게 아니다. 우리의 밥그릇은 언론의 공공성이라는 밥그릇, 언론자유라는 밥그릇, 그리고 없는 자, 약한 자, 서민들의 밥그릇과 나란히 한 상에 놓여있다. 이 상을 통째로 지켜내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이번 파업은 언론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했다. 나도 모르는 새, 힘있는 자, 돈 많은 자, 기득권층의 시선에 동화되진 않았는지. 혹여나 그랬다면 언론인으로서의 초심을 다져야 한다. 힘없는 자, 가난한 자, 낮은 곳에 있는 자의 눈높이에 맞춰 소명을 다해야 한다. 이런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는 총파업 투쟁은 무의미하다.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선다. 눈앞에 크고 작은 산들이 펼쳐져 있다. 산이 험할수록 도전심이 더 강하게 꿈틀대는 법.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암벽을 넘어서야 한다. (한토마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