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유가급등 조작한 투기 주범 속속 드러나

녹색세상 2008. 8. 6. 14:53
 

에너지 투기거래의 구멍 ‘엔론루프홀’


지난 7월 24일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옵티버 홀딩(Optiver Holding)이라는 회사를 석유 가격 조작 혐의로 고소했다. 에너지시장에서의 투기거래에 대한 조사가 실시된 후 적발된 첫 사례다. 옵티버 홀딩은 두 개의 자회사와 세 명의 트레이더를 시켜 원유선물시장이 마감되기 직전에 막대한 양을 사들여 지금까지 종가폭발(bang the close)을 유도했음이 드러났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자국에서 생산되는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를 안보상 전략물자로 정해 해외에서의 거래와 투기를 막는 정책을 펼쳐왔다. 석유 선물거래는 1982년 이후 뉴욕상품거래소(NYMEX) 등의 제한된 장소에서 CFTC의 규제 아래 선물과 옵션의 거래량이 엄격히 관리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이른바 ‘상품선물현대화법’이 통과되면서 구멍이 뚫리게 되었다.


상품선물현대화법은 대형 전문 투자자들에게는 해외에서의 전자 거래와 파생상품 거래를 허용하고 CFTC의 감시를 면제시켜, 사실상 불투명한 투기를 양산시켰다. 2002년 당시 세계 7위의 거대 에너지기업 엔론사는 로비 사실이 밝혀지면서 최대 규모의 회계 부정으로 몰락하였고, 후에 이 법안의 투기거래 구멍을 ‘엔론루프홀(Enron Loophole)’라 부르게 되었다. 올해에만 벌써 40차례 가까이 열린 상원 청문회의 증언에 따르면, 대규모 헤지펀드와 투자은행들이 엔론루프홀을 이용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엔론루프홀을 “경찰도 없고 속도제한도 없는 고속도로”라 표현한다.


최근 유가 하락의 원인은?


올해 CFTC의 조사로 투기적 요소가 유가상승에 약 70%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골드만 삭스와 같은 거대 투자은행들, 엑슨모빌과 같은 거대 에너지기업들이 부도덕한 거래행위를 주도했음을 보여주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런던석유시장(ICE)을 이용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선물시장인 ICE도 투기거래에 동참하고 있었던 것이다. NYMEX와 ICE의 선물가격은 세계 유가를 사실상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예컨대, 러시아와 노르웨이와 같은 비OPEC의 주요 산유국들은 이들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자국에서 생산된 원유가격의 기준으로 삼는다. 세 번째로 큰 석유거래소인 DME(두바이상품거래소)도 뉴욕과 런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투기거래 문제를 오래전부터 지적해왔던 경제학자 엥달(F. William Engdahl)은 주요 인사가 겸직을 해 사실상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엥달의 표현에 따르면 DME는 NYMEX의 ‘딸’쯤에 해당될 뿐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2003년 이후 기록적인 유가 급상승의 배경에는 금융자본의 투기행위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유가가 들썩이면 주요 원인으로 설명되던 ‘수급불안’이나 ‘지정학적 위기’는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7월 첫 주에 145달러까지 돌파했던 유가가 최근 5주 연속 하락 추세에 있다. 그렇다면, 최근 유가 하락세는 그 역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최근 미국의 의회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투기거래 규제 움직임의 영향으로 이해된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연일 엔론루프홀의 완전폐지를 정책 쟁점으로 내세우고 있고, 상원은 15개의 규제 관련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부도덕한 자본은 규제로 막아야


앞으로 석 달 남짓 남은 미국 대선이 끝나기까지 투기규제의 움직임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한 올 하반기에는 유가가 안정될 것으로 점쳐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함께 급등했던 원자재와 곡물의 가격도 최근 유가와 비슷한 폭락세를 겪고 있다. 이 추세가 언제까지 지속 될 것인가? 2006년에도 미국에서 투기거래제한 법안을 통과시키고자 했으나, 부시 정부와 의원들의 소극적 태도, 에너지 금융기업들의 로비로 무산된 바 있다. 따라서 아직 섣부른 장담을 하기는 어려우나, 이번에는 규제법을 피하기 힘들 전망이 높다. 투기 자본이 만들어 놓은 후과(스태그플레이션)가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확대되어 미국 정치권도 어쩔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투자 자본과 투기 자본을 구별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자본은 언제나 가장 손쉽고 자유롭게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생활인의 입장에서는 부도덕한 자본을 가려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따라서 그에 대한 규제도 항상 필요하다. (새사연/이상동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