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그머니 수정된 협정문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에 대한 주권을 ‘미확정 상태’로 변경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독도 인근의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대륙붕에 대한 주권에 관해 논란의 소지가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영토 조항’ 수정 문제가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기존의 정부 해명을 뒤집고 한미 FTA에서 한국 영토 조항이 수정된 것은 미국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 국회에서 증언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한미 FTA 한국 영토 조항 수정이 미국의 판단과 계산에 근거한 것이었음을 뒷받침한 것으로서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FTA를 백지화하거나 뜯어고치지 않는 한 독도를 ‘주권 미확정 상태’(Undesignated Sovereignty)로 바꾼 미 지명위원회의 결정과 유사한 사례가 또 발생해도 한국 정부가 손을 쓰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제가 되는 한미 FTA의 조항은 FTA가 적용되는 범위를 확정하기 위한 이른바 ‘영토 조항’이다. 이 조항에서는 한국의 영토를 “대한민국이 주권을 행사하는(excise) 육지ㆍ해양ㆍ상공, 그리고 대한민국이 국제법과 국내법에 따라 그에 대해 주권 혹은 관할권을 행사해도 되는 영해의 외(外)측 한계에 인접 및 그 너머에 위치한 해상(海床) 및 하층토를 포함한 해양 지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크게 둘로 나뉜다. 전반부는 “대한민국이 주권을 행사하는 육지ㆍ해양ㆍ상공”이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대륙붕에 관한 부분이다. 문제는 영해,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대륙붕에 대한 주권 혹은 관할권은 ‘행사해도 되는’이라고 유보적으로 표현됐다는데 있다. 이 표현은 지난해 한미 FTA 협상 타결 후 5월 25일 협정문을 공개했을 때까지만 해도 ‘행사하는’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개월여 후인 6월 30일 공개된 서명본에는 후반부의 표현이 ‘행사해도 되는’으로 수정되어, 두 표현을 구분한 이유가 뭐냐는 논란이 일었었다. 송기호 변호사는 지난해 7월 ‘프레시안’ 기고문을 통해 ‘행사하는’을 ‘행사해도 되는’으로 고쳐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수역이 있다면 그것은 독도에 의해 형성된 EEZ와 대륙붕밖에 없다면서, ‘행사해도 되는’이라는 표현이 독도 영해, EEZ, 대륙붕 영유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자청했다’―‘미국이 요청’
이에 대해 당시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당시 두 가지 해명을 해왔다. 우선 ‘행사해도 되는’으로 변경한 것은 미국의 요청이 아니라 한국이 자청해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표현은 국제법적으로 차이가 없다고도 말했다. 당시 외교부는 ‘프레시안’ 기사를 반박하면서, 영토 조항 변경은 미국이 요청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거듭 해명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9월 민주사회를 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외교부를 대상으로 낸 정보비공개처분취소 소송에 대한 답변문에서도 “우리 정부의 요청에 따라 수정된 부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올 5월 13일 한미 FTA 협상의 수석대표였던 김종훈 본부장이 외교부의 기존 해명과 180도 다른 말을 하면서였다. 17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이 날자 회의록에 따르면, 표현을 왜 수정했냐는 최재천 의원의 질문에 김 본부장은 “자기들(미국)은 늘 이런 말(행사해도 되는)을 쓰니까 같이 쓰자고 미국이 먼저 제의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문제의 ‘독도 조항’은 미국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송 변호사는 지난해 7월 당시 외교통상부의 해명에 대해, 미국-파나마 FTA의 경우 파나마는 ‘행사하는’이란 표현을 모두 쓰고 있다며(미국은 자국의 영토를 언급하며 ‘행사해도 되는’이라고 표현) 영토에 관한 표현을 다른 나라에 따라가기 위해 바꾸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송 변호사는 한국이 그 전에 맺은 칠레 및 싱가포르와의 FTA에서 한국은 모두 '행사하는'이란 표현을 썼다며, 한미 FTA에서 두 표현을 구분한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한국이 비록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더라도, 이를 기점으로 하는 영해, EEZ, 대륙붕의 영유권 주장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이 영토 조항 후반부의 ‘행사하는’을 ‘행사해도 되는’으로 바꾸자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행사해도 되는’이 더 유리하다?
논란이 벌어지자 외교부는 ‘행사하는’이나 ‘행사해도 되는’이나 국제법적으로 똑같다는 주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행사해도 되는’이라는 표현이 더 유리하다는 엉뚱한 답변까지 내놨다. 외교부는 민변에 대한 답변서에서 “주권을 행사하는(excise) 영해 인근의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 뿐만 아니라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may exercise) 영해 인근의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 한층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김종훈 본부장도 5월 13일 통외통위에서 ‘may’(‘~할 수 있는’ 혹은 ‘~해도 되는’)가 들어가면 “우리가 정하면 그것이 우리 것이라는 뜻”이라며 “남이 어떻게 보든 간에 우리가 엑서사이즈(행사)하겠다 하면 우리 것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송기호 변호사는 “may의 의미는 김 본부장과 같이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개념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규범적인 개념”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또 민변 답변서에서 “한 나라의 영토는 하나의 통상조약상의 표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국의 국내법과 국제법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며 “FTA의 적용 범위를 확정하기 위한 위 조항을 들어 국가 주권의 적용 범위로 확대해석하는 원고(민변)의 주장은 지나치게 과장되고 논리비약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것은 외교부의 순진한(?)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왜냐하면 일본이 향후 한미FTA 영토조항 수정을 악용할 여지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은 또한 국회 답변에서 “그 때 이것이 그렇게 문제될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말해 이 조항의 변경이 악용될 가능성에 대해 깊이 대비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송 변호사는 “미국이 왜 한미 FTA의 한국 영토조항의 수정을 요구했는지, 그리고 왜 한국 정부가 이러한 사실을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는지 그 경위가 명확히 밝혀져야 하며, 한국 영토 조항은 원상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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