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신조어 모르는 당신은 2MB!(구시대 바보)

녹색세상 2008. 7. 27. 17:34
 

인터넷 너머 일상서 왕성하게…상반기 최대 히트어는 ‘명박산성’


“하루가 멀다 하고 생기는 신조어, 따라잡기 힘들어요.”


중소기업 기획실에 근무하는 김정현 부장은 얼마 전 부하직원과 회식을 하면서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걸핏하면 “킹왕짱(정말로 최고)이야!” 하며 자기들끼리 손벽을 마주치거나, 쿠거족(어린 남자와 데이트하거나 결혼하는 여성)이니 나이트쿠스족(밤 10시~오전 2시에 더 활동적인 사람)이니 빵상(외계어로 안녕)이니 하며 깔깔댔기 때문이다. 20~30대 초반의 직원들끼리는 통하는 그 생소한 용어를 김 부장만 모르는 것이다. 처음엔 “킹왕짱이 뭐야?” 하면서 대화에 끼어들려고 노력했지만 “에이, 그것도 모르세요?” 하는 반응에 이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내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그들의 대화 속에 등장한 ‘된장녀’까지는 알겠는데 ‘신상녀’는 처음 듣는 용어였다. 된장녀는 자기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존해 명품을 즐기는 여성을 비하하는 속어이며 신상녀는 열심히 발품을 팔아 새로 나온 명품을 재빠르게 구입하는 여성을 뜻한다. PC통신과 인터넷 시대를 거치면서 신조어가 범람한 지 오래. 하지만 요즘 신조어는 단순히 인터넷 매체에서만 생산되고 유통되지 않는다. 신문, 방송 등에서도 연일 새로운 용어가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지면서 왕성하게 생산ㆍ소비된다. 일반인이 만든 것도 있고, 언론이 생산한 것도 있으며 외국에서 차용해 쓰는 것도 있다.

 

 


올 들어 정치권과 관련 신조어 많아


올 들어서는 유난히 정치권과 관련한 신조어가 많이 탄생했다. 새 정부 출범 직전부터 ‘고소영’ ‘강부자’ ‘명세빈’ 세 여자 탤런트의 이름이 신문지상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회자됐다. 하지만 이는 탤런트를 지칭한 게 아니다. 고소영은 이명박 대통령의 학벌, 종교, 지연을 꼬집은 것으로 이 대통령이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권 인물을 대거 내각에 기용한 것을 빗댄 것이다. 강부자 역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장관 내정자들이 신고한 재산 내역이 평균 40억여 원에 달하는 ‘강남의 부동산 자산가’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생긴 용어다. 즉 강남의 땅부자라는 조롱 섞인 신조어다. 또 명세빈은 지난 6월 이 대통령이 청와대 고위급 참모들을 물갈이하기 전 대통령 인사팀이 새로운 인선의 기준으로 ‘비(非)영남, 비(非)고려대, 재산 30억 원 이하’를 제시하면서 생긴 신조어다. 네티즌이 만든 이 신조어는 명확하게 세 가지가 빈약한 인물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S라인(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 시 가신그룹), 만사형통(萬事兄通: 모든 일은 형을 통해야만 이루어진다)도 유행했다. 또 2MB(이 대통령의 이름을 숫자와 알파벳으로 지칭한 동시에 2메가바이트라는 뜻으로, 즉 구시대의 바보란 의미), 명박하다(운명이나 팔자가 기구하고 복이 없다는 뜻) 등 대통령의 이름을 사용해 한껏 비꼰 표현도 인기를 모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2MB’라는 부정적 별명으로 불리는 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노간지’라는 호의적 별명이 붙어 묘한 대조를 보인 것. 노간지는 ‘폼이 난다’ ‘멋지다’ 등의 의미를 담은 속어에 노 전 대통령의 성을 붙인 것이다. 퇴임 후 시민으로 돌아간 노 전 대통령의 일상이 담긴 사진이 인터넷에 돌면서 붙은 별명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에는 네티즌에 의해 ‘놈현스럽다’(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준다는 의미)라는 불명예스러운 표현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10월 이 단어를 ‘사전에 없는 말 신조어’ 사전에 실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시민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


올 상반기 가장 히트한 신조어는 ‘명박산성’이다. 경찰이 100만 촛불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의 청와대행을 막기 위해 광화문 네거리에 설치한 컨테이너박스로 친 바리케이트를 빗댄 용어다. 더구나 명박산성은 다국어판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에 소개돼 화제가 됐다. 인터넷미디어협회 정책위원장 변희재 씨는 “PC통신 시절부터 나온 신조어는 사이버 문화의 본질로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은 한 끊임없이 생산될 수밖에 없다”며 “사이버 상에 팽배한 평등의식의 결과, 대통령이건 누구건 쉽게 조롱의 대상이 돼 명박산성과 같은 신조어가 빈번하게 붙여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변 위원장은 또 “문제는 이 같은 온라인에서 실험적으로 유통되는 신조어를 인터넷 매체 등을 중심으로 한 언론에서 마구잡이로 가져다 쓰면서 인터넷에 권력을 부과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씨는 “컴퓨터 자판을 치기 귀찮아 약자로 쓰면서 신조어가 생기는 측면도 있지만 인터넷에서 여론의 생산 주체가 된 네티즌이라는 이름의 시민들이 말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나 무기로 사용하면서 신조어가 많이 탄생한다”며 “지나친 문법 파괴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국민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아래에서 위로 솟구친다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반면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 현상’을 저술한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김다은 교수는 “신조어가 새로운 사상이나 철학, 비전을 보여주는 경우라면 긍정적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는 대부분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을 한층 더 심화시키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아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