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자산운용’, ‘자산관리’, ‘재테크’, ‘투자’라는 용어가 일반인들에게도 매우 친숙하게 되었고, 어느새 펀드 계좌 1,000만개, 펀드 잔액 100조 원 시대가 열렸다. 마치 온 국민이 주식에서 펀드로 투자열풍에 뛰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투자자=국민’, ‘투자자 보호=국민 보호’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처럼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투자의 시대에 불어 닥친 원자재와 곡물 가격 폭등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는 엉뚱하게도(?) 실물경제로 전이되었다. 특히 금융상품에서 손을 뗀 막대한 유동자금이 비 금융상품인 금, 석유, 철강, 구리, 밀, 옥수수, 커피, 코코아와 같은 실물상품으로 대거 옮겨가 이른바 실제 수요가 아닌 투기적 수요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금값 1,000달러, 유가 100달러, 철강, 밀 등 곡물 가격 폭등현상을 단숨에 부채질했다. 멕시코와 터키에서는 밀가루 가격이 몇 배나 올라 파동이 날 지경이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라면값이 100원 올라 때 아닌 사재기 열풍에 휩싸였다. 서민들에게는 식료품과 생활필수품 값의 폭등은 재앙의 전조나 다름없다.
서민은 울상 짓고, 투자자는 호재 만난 듯
서민들의 힘든 상황과 달리 ‘투자자’들은 이 또한 ‘자산관리’를 위한 새로운 호재이자 노하우를 쌓을 기회로 보는 것 같다. 주식을 털어버리고, 금융상품에서 빠져나와 금이나 철광석 같은 원자재, 곡물 선물시장이나 관련 펀드에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권고로 바쁘다. 최근에 곡물가격이 급등하자 곡물관련 기업에 투자하느냐를 두고 논의가 분분했다. 투자자들에게 식료품이 올라 서민의 생활이 어려워지는 문제는 전혀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전 세계가 먹는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졌고, ‘오일쇼크(유류파동)’에 버금가는 ‘그레인 쇼크(grain-shock)’가 왔다고 고민하는 판국에 투자자들은 곡물가격 폭등 속에서 새로운 투자의 기회를 잡으라고 조언하고 있다.
‘투자자=국민’으로 볼 수 없다
주식투자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주식 투자자는 360만 명 정도다. 전체 인구의 7.4퍼센트이며 경제활동인구가 2,400만 명 정도가 되니 경제활동 인구대비 15퍼센트다. 물론 적지 않은 수이지만 우리나라 대학생 인구(300만 명)보다 조금 많은 정도다. 이들 360만 명이 보유한 주식 시가총액을 모두 합해봐야 사실은 2만 정도의 소수 외국인이 보유한 금액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주식투자로 자산을 운용해 실제로 재산을 불리는 국민은 더욱 미미하다. 우리나라 국민의 전체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70퍼센트이며, 전세와 월세 보증금, 예금, 적금, 주식을 모두 합친 금융자산이라고 해봐야 20퍼센트 남짓이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투자자라는 사고는 거의 착각에 가깝다. 물론 최근에는 직접 주식투자보다 간접적인 펀드를 선호하니 그 인구를 합하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일반 펀드 가입자들은 투자보다는 거의 ‘위험부담이 약간 있지만 이자율이 높은 적금’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투자자로 보기는 어렵다.
지난 2월 21일 영국 정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경영위기에 빠졌던 노던록 은행에 대해 한시적이지만 전격적인 국유화조치를 단행했다. 이 조치로 140만 명의 노던록 예금 고객과 세금 550억 파운드를 지불한 6,000만 영국민들은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신자유주의 맹주의 한 나라인 영국정부가 주주(투자자)를 먼저 고려할 것인가, 납세자(국민)를 먼저 고려할 것인가에서 국민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처럼 투자와 국민의 이익은 같은 것이 아니다. 특히 은행과 같은 공적인 기관이나 곡물과 같은 국민의 삶이 걸린 문제에서 투자자와 국민의 입장은 대체로 첨예하게 갈라질 개연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는 누구의 편을 들 것인가, 투자자인가 국민인가? (새사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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