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프랑스, 국어에 몰입하고 산수를 중시한다.

녹색세상 2008. 3. 6. 21:58
 

최근 프랑스 젊은이가 사용하는 속어 중에서 ‘베를랑’(Verlan)이라는 것이 있다. 기존 단어의 모음과 자음 위치를 바꾸어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엄마’를 ‘멈아’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 외에도 인터넷 시대이다 보니, 한국에서처럼 프랑스에서도 국적 불명 ‘외계어’ 같은 표현이 늘고 있다. 또한 영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프랑스에서도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영어와 비슷한 어휘가 많은 프랑스어이다 보니 뜻은 전혀 다른데 형태가 비슷한 영어 단어를 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 및 중동 출신의 이민 가정이 늘어나는 사회 여건도 바른 언어 사용의 저해 요인이다.

 

 ▲ 프랑스는 영어 등 외국어는 고등학교 때 철저히 가르치는 정책을 편다. 위는 프랑스 학교의 외국어 수업 모습.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는 초등학교 프랑스어 교육을 대폭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 15%가 읽기와 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교육부 장관인 자비에 다르코스는 지난 2월 20일 국영 방송인 France2를 통해 새로운 교육개혁안을 발표하며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이 초등교육 개혁안은 2008년 가을 새 학년부터 실시될 예정이다. 교육개혁안 가운데 핵심은 프랑스어 교육 강화다. 다르코스 장관은 “프랑스어와 산수를 정확히 사용하지 못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한다”라며 “이번 개혁안을 통해 초등학교가 이후의 교육 과정을 심화시킬 수 있는 열쇠를 주도록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아동 교육은 3~11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3기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1기 과정은 3~6세 어린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맡는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2기와 3기 과정을 배우게 되는데 2기 과정에서는 6~8세 어린이가, 3기 과정에서는 8~11세 어린이가 교육을 받는다. 현재 초등학교 수업은 1,2,3기 모두 월·화·목·금 4일과 토요일 오전 시간을 합쳐 주당 26시간이다. 이번 개혁안에 따르면 프랑스어 교육 시간이 2기 과정에서 주당 9시간, 3기에서는 6시간이던 것을, 각각 10시간과 8시간으로 늘어난다. 교육 내용도 개정되는데, 프랑스어를 활용하는 것에서 정확하게 읽고 쓰는 것으로 중점이 옮아간다. 그래서 철자법, 시제 표현 등의 문법 교육이 강화된다. 프랑스 교육부는 바른 언어 사용 교육을 통해 초등학생의 은어 및 속어 사용을 줄일 계획이다.


교원 평가안 놓고 교육부ㆍ교원단체 ‘갈등’


그렇다고 외국어 교육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9월4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발표한 ‘교육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따르면 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 뒤 ‘적어도’ 외국어 두 개는 구사할 수 있도록 교육시킨다는 계획이 담겼다. 이를 위해 2010년까지 지속적으로 외국어 교사를 충원하기로 계획을 세웠고 이미 초등학교에서 외국어 교육이 실시 중이다. 하지만 프랑스어와는 전적으로 위상이 달라 교육 시간이 주당 1시간30분으로 편성되었을 뿐이다. 프랑스어와 더불어 이번 초등교육 개혁안에서 강조된 또 하나의 기본은 산수이다. 프랑스에서는 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 상당수가 기본적인 셈을 ‘완벽하게’ 익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에게는 사칙연산과 1차 방정식 (15+X=32)을 어려워한다는 것. 이를 위해 암산 교육을 강화할 방침이다.


마지막으로 강조된 것이 체육 교육이다. 주당 3시간에서 4시간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사회 과목은 프랑스와 유럽에 관한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와 그 밖의 국가 상징을 잘 모르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역사·지리는 핵심만을 가르치겠다고 밝혀 사실상 교육 시간이 축소될 것임을 밝혔다. 프랑스어와 산수를 강화하는 것이 골자이지만 역설적으로 전체 교육 시간은 주당 26시간에서 24시간으로 줄어들었다. 토요일 오전 교육을 없애고 평일에만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한편 중학교에 진학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 가운데 성적이 낮은 이들은 방학 동안 하루 세 시간을 프랑스어와 수학 보충학습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 올해 4월 부활절 방학부터 보충수업을 실시하는데 학생들은 6명 이하의 그룹으로 편성된다. 교육은 지원교사가 맡으며 정부로부터 강의료를 보조받는다.


이번 교육개혁안에 대해 교실 현장에서는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월20일, 초등교육 교사 및 강사 노조(SNUipp)는 “3기 과정에서 주당 10시간의 프랑스어 교육과 5시간의 수학 교육, 4시간 스포츠, 1시간30분의 생활 외국어를 편성하면 이미 20시간30분이 되는데 어떻게 과학·역사·예술 교육을 할 것인가”라며 새로운 개혁안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이번 개혁안이 직면한 가장 큰 불씨는 교원 평가안이다. 개혁안에 따르면 교사들은 2년마다 평가를 받게 되어 있는데 아직 구체적인 평가 방안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교육부와 교원단체 사이에서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2월21일자 레제코 신문에 따르면, 교원노조(SE-UNSA)는 교원평가 방안을 “교육을 계량화하려는 생각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다르코스 장관은 “공교육이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 성공 역시 당연해야 한다”라며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 한 가지 논란이 되는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나치 독일의 유태인 학살을 가르치는 방안이다. 한국의 일제시대 수난상에 해당하는 역사 사실에 대한 찬반 논란이 우리로서는 의아스럽지만, 이들은 이 문제를 민족주의가 아닌 교육 측면에서 고민 중이다. 찬성하는 측은 어린이에게 과거 역사를 전해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반대하는 측은 어린이에게 심리적 충격이 클 것으로 염려한다. 이번 교육개혁안을 요약하자면, 초등학교에서는 국어와 체육 수업을 강화하는 대신 나머지 과학이나 외국어 교육은 상급 학교 과정에서 잘 가르치겠다는 뜻으로 요약할 수 있다. 초등학생이 익혀야 할 것은 ‘기초’라는 얘기다. (시사 IN/표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