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작은 나라라서…”
덴마크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에 대해 설명할 때 흔히 시작하는 말이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덴마크가 큰 나라인지 작은 나라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덴마크에 대해 입을 열면 꼭 ‘작은 나라’라는 단서부터 붙인다. 그래서 언젠가는 가깝게 지내던 덴마크 인에게 “그래 덴마크는 작은 나라야. 한국에서는 몰랐는데 여기 와서 작은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라며 일부러 짓궂게 대답한 적도 있다. 그랬더니 그이는 “실은 스웨덴도 우리 땅이었고 노르웨이도 우리 땅이었는데…”라며 덴마크가 예전에는 얼마나 큰 나라였는지를 슬며시 내비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킹 시대에는 한때 영국의 일부까지 다스렸고, 그 후 14세기에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합병하여 스칸디나비아 3국을 통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523년에 스웨덴이 독립해 떨어져 나가고 크리스티안 4세 시절에는 2차에 걸친 스웨덴과의 전쟁으로 국토를 잃었다. 지금의 스웨덴 최남단이 된 룬트, 헬싱고, 말뫼 등지의 땅은 그때 빼앗긴 것이다. 그 뿐 아니다. 덴마크는 시쳇말로 줄을 잘못 서서 크게 손해를 본 나라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나폴레옹 편에 섰던 덴마크는 영국ㆍ러시아ㆍ스웨덴 등의 동맹국과 싸운 끝에, 1814년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할양해야 했다. 영국의 넬슨제독이 코펜하겐까지 쳐들어 와서 군함을 모조리 끌어가고 배를 건조하기 위해 쌓아둔 목재를 다 불태우는 바람에 덴마크의 해군력은 한동안 재기 불능의 상태에 빠졌고, 발틱 해의 제해권을 잃은 것도 그때부터이다.
1864년에는 1460년 이래 동군연합(同君聯合)의 형태로 덴마크에 속해 있던 유틀란트 남부의 슐레스비히ㆍ홀슈타인 두 공국을 프로이센ㆍ오스트리아와 싸워서 패한 뒤 할양하였다, 이 땅 가운데 일부인 북 슐레스비히를 제1차 세계대전 후 주민투표에 의해 되찾기는 했다. 한편 본래 노르웨이 령이었다가 덴마크에 속하게 된 아이슬란드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6월 독립하였다. 그리하여 북극권에 가까운 그린랜드를 제외한 덴마크 본토는 현재 한반도 1/5 정도의 면적에 인구 530만 가량의 작은 나라로 남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덴마크는 여러 차례 전쟁에서 패하여 계속 영토가 축소된, 수모와 굴욕의 역사를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항상 “우리는 작은 나라라서”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들은 아픈 역사적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행복과 실리를 찾는다. 덴마크 사람이 ‘세계 제일’이라고 뽐내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사실 덴마크 디자인이나 가구, 건축설계, 제약, 컨테이너 선박, 음향기기, 식품 등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게 꽤 많은 데도 말이다.
그들은 구태여 ‘세계 제일’을 추구하지도 않는 것 같다. 체면이나 겉치레보다는 실속을 챙기는 사람들이다. 건물을 봐도 화려하고 큰 건물이 드물다. 오히려 초라할 지경이다. 그러나 그 속을 들어가 보면 깔끔하고 세련된 내부치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849년에 입헌군주제가 된 이래 복지국가의 기반을 마련하여 발전시켜 온 덴마크는 이제 국가 경쟁력이 세계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강소국이다. 작은 나라가 대국민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에는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하여, 덴마크의 경우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제도를 고쳐가며 시대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 간다. 영토는 작아졌으나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는 그 어느 나라보다 수준이 높은 복지국가다. 실제로 덴마크인의 행복지수는 번번이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프레시안/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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