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촛불 때문에 선수들이 쓸쓸하게 운동을 해?

녹색세상 2008. 8. 25. 23:05
 

“촛불시위로 국민의 관심이 한곳에 매몰돼,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이 적막하고 쓸쓸하게 구슬땀 흘리며 운동을 했습니다. (중략)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연택 체육회장의 과잉충성 듣기 매우 거북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선수단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이연택 대한 체육회장의 첫 일성이다. 촛불시위를 비판하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는 이 말은 이날 하루 동안에만 3차례나 똑같이 반복됐다. 이중 두 차례는 YTN과 KBS 등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 됐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은 해단식과 거리 퍼레이드를 위해 2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함께 입국했다. 공항에서 간단한 기자회견을 마친 선수단은 곧바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로 이동해 해단식에 참석했다. 행사가 열리기 훨씬 이전부터 세종문화회관 주변에는 선수들을 보려는 시민 수 백 명이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박태환, 장미란 등을 비롯한 선수들의 모습이 나타나자 환호성과 박수를 보내며 반가움을 표했다. 선수들 역시 밝게 웃으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 수십여 명의 시민들이 베이징올림픽 여자핸드볼 경기에서 뒤집어진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한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하며 ‘거꾸로 태극기’를 들고 있자 정ㆍ사복 경찰들이 수백 명이 행사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해단식은 경찰과 사설 경호업체 직원들의 출입 통제 속에서 짧게 진행됐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이연택 체육회장은 인천공항에서 열린 기자회견과 똑같이 작심한 듯 촛불시위를 비판하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 회장은 “촛불시위 때문에 썰렁한 태릉선수촌에서 선수들은 말없이 구슬땀을 흘렸다”며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두 번씩이나 선수촌을 방문해 선수들을 격려해줬다, 한승수 총리도 오늘 해단식에 참석해줬다, 이것도 정이 아닌가 싶다”고 말해 이명박을 향한 충성심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어 김정행 선수단장은 한승수 국무총리,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원세훈 행정자치부장관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역시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등 마찬가지 ‘명비어천가’를 읊어댔다. 이들과 더불어 한승수 국무총리의 환영사를 끝으로 해단식은 짧게 마무리 됐다.


한 국가대표 선수는 “촛불시위 하고 우리가 태릉선수촌에서 운동하는 게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연태 회장의 발언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지만, 너무 아부하는 것 같아 좀 듣기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 선수는 소속과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또 이날 해단식에는 약 10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렸다. 하지만 메달을 딴 일부 유명선수들에게 취재가 몰려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요트, 싸이클, 복싱, 레슬링 등의 선수들이 앉은 테이블은 상대적으로 썰렁했다. 하지민(요트) 선수는 “요트가 좋아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인기 종목처럼 관심을 받지 못해도 상관없다”며 웃어 보였다. 이어 선수단의 거리 도보 퍼레이드.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 때문에 퍼레이드는 다소 지연됐다. 행사를 준비한 쪽이 부랴부랴 우비를 준비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일부 선수들은 이 우비를 입고 세종로 사거리 동화면세점 앞에서 시청 앞 서울광장까지 행진을 했다.

 

▲ 수십여 명의 시민들이 베이징올림픽 여자핸드볼 경기에서 뒤집어진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한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하며 ‘거꾸로 태극기’를 들고 있자 정ㆍ사복 경찰들이 수백 명이 행사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계속된 ‘명비어천가’와 일상화된 촛불


약 1만여 명의 시민들은 올림픽 참가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둔 선수단에게 큰 환호를 보냈다. 특히 박태환(수영), 이용대(배드민턴), 장미란(역도) 선수 등은 시민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이어 서울광장에서 열린 환영행사. 이연택 회장의 ‘명비어천가’는 또 이어졌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이 회장은 “바로 이곳에서 열린 촛불시위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이 한 곳으로 매몰됐다”며 “선수들은 적막하고 쓸쓸하게 실력을 갈고 닦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해 ‘임 향한 일편단심’을 드러내 과잉충성을 했다. 선수들을 보기 위해 서울광장을 찾은 이호석 씨는 “촛불시위 때문에 선수들이 적막하게 운동했다는 말이 듣기 매우 거북하다”며 “선수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역시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든다”며 천천히 자리를 떠났다.

 

▲ 수십여 명의 시민들이 ‘거꾸로 태극기’를 들고 있는 가운데, 한 시민이 사복경찰들에 강제 연행당하고 있다. 공권력이 저지르는 명백한 불법 행위다. (사진:오마이뉴스)


 

한편, 이날 도보 퍼레이드가 열릴 때 약 20여 명의 시민들은 거꾸로 달린 태극기를 흔들며 ‘거꾸로! 거꾸로!’를 외쳐 이명박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들의 퍼포먼스는 베이징올림픽 여자 핸드볼 예선 경기에서 거꾸로 걸린 태극기를 흔들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행위를 패러디 한 것이다. 이 퍼포먼스에 참석한 김성민 씨는 “선수들은 환영하지만, 선수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이명박 정부에게 우리의 뜻을 전달하고자 오늘 행사에 참석했다”며 “정부가 생각만큼 우리 국민들은 쉽게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 또 서울광장에서 환영행사가 열릴 때는 이들과 경찰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져 2~3명이 경찰에 불법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거꾸로 태극기’ 퍼포먼스를 벌였던 시민 10여 명은 모든 환영행사가 끝난 저녁 8시 30분 후덕수궁 앞 횡단보도를 오가며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횡단보도 시위’를 계속했다. 이제 촛불은 일상 속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야구장이나 축구장, 야외음악당 같은 곳에서 촛불을 보는 것이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오마이뉴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