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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형, 잘 지내시는지요.

녹색세상 2008. 8. 22. 00:27

김 형, 잘 지내시는지요.

사람이 아무런 연락이 없는데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연락도 없는지 참 섭섭합니다. 지금의 제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 말이죠. 저 역시 연락을 안 했으니 피장파장이니 이걸로 피차 빚갈이 하도록 하죠. ^^ 에어컨 털지 않고는 못 자는 밤이 엊그제였는데 벌써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고 낮에 걸어 다녀도 더위를 모를 정도입니다. 철 따라 우리 삶의 환경을 바꿔 주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계절의 변화가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것은 결코 아니죠. 철이 변하니 가을의 향취를 느낄 수 있어 좋지만 없는 사람들은 새로 옷을 사야하고, 코앞에 닥친 추석 때문에 걱정이 하나 둘 늘어만 가니 좋은 것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올 추석이 일찍 오는 바람에 8월 더위에 명절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보입니다.

 

저는 올봄 국회의원 선거 후 수구골통들이 싹쓸이 하자 이 사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어 낙담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2년 가까이 끝 행정소송에도 패소하고 나니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판사의 말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당신 말이 맞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거죠. 2년이 지난 정신과 질환을 앓은 사람에게 지금에 와서 신체감정을 받는 게 유일한 것이라고 하니 법 이전에 상식 이하의 논리가 판을 치는 거죠. 이럴 때 사람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리려 노력을 했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더군요. ‘개혁이나 변혁은 수십 년을 바라보는 장기전’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었지만 전과 14범인 이명박이가 대통령이 되고, 꼴통들이 개헌이 가능한 원내 3분의 2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고 삶의 의욕을 잃었던 게 사실입니다. 영화배우 김부선 씨 말 처럼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단 1퍼센트의 미련도 없다’는 생각에 재판에 ‘승소만 하면 여길 떠나자’는 생각을 수시로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미친 쇠고기 안심하고 먹어라’는 이명박의 오만방자함에는 뚜껑이 열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거의 매일 ‘광우병 쇠고기반대’ 촛불집회에 나가 촛불을 들었습니다. 누구의 말처럼 이미 그 틀은 노무현 정권 때 만들어졌고, 이명박이 빗장을 좀 더 열었을 뿐인데 촛불은 순식간에 전국 곳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럴 때 저는 ‘광우병은 초식동물에게 육골사료를 먹인 인간의 탐욕이 낳은 창조질서의 파괴’라는 신앙고백을 하면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었습니다. 장로 대통령 때문에 철만난 새처럼 날 뛰는 한국교회를 향한 수 없는 쓴 소리를 들으면서 지난 노무현 정권 초기 ‘같이 일 하자’는 유혹을 거절한 게 천만다행이요 하느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처신이었다고 감히 고백을 합니다. 보수정당은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신념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하느님이 명토박아 주신 거죠. “여러분에게 어떤 신념이 있다면 하느님 앞에서 각각 그 신념대로 살아가십시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사람은 행복합니다.”(롬14:22)고 한 바울의 가르침을 요즘 자주 떠 올립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기독교신자라는 게 이렇게까지 부끄럽지는 않았습니다.

 

 

군사독재 정권도 먹는 것 가지고는 장난치지 않았는데, 난데없이 먹는 것 마저 강요하는 이명박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는 게 겨우 촛불 하나 드는 것 뿐인 나 자신을 자책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거리로 나갔습니다. 아마 이렇게 장기간 권력과 싸운 것은 87년 이 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전 세계는 한국의 촛불을 지켜봤고 특히 아시아 민중들은 ‘한국의 촛불’이 어디로 가는 가를 가슴 졸이며 보고 있을 것입니다. 사회 운동 2~30년 했다는 운동선수들과 학자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다양한 형태의 평화적인 저항에 모두가 놀랐습니다. 어린 아이를 태운 젊은 엄마들의 유모차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의상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의 인터넷 동호회와 사진동호회, 차량 동호회 등 상상도 하지 못 했던 인터넷의 위력이 폭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차량 동호회원들은 경적을 울리며 ‘촛불차량 시위’를 조직하고, 사진동호회원들은 시민 기자가 되어 경찰의 폭력과 불법 행위를 감시하는 무서운 눈이 되어 공권력을 움츠리게 만드는 제동 장치가 되었죠. 디지털 사진기가 가장 많은 나라의 ‘인터넷과 결합한 위력’이 나타나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떠 ‘광우병 정국’은 신문을 기다릴 필요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그저 얼굴만 알던 다른 시민단체의 활동가들과는 자연스레 ‘선후배’로 얼굴을 트게 되었죠. 안면만 있던 아저씨가 수천 명의 시민들 앞에서 분노를 토하는 모습을 보면서 ‘형님 예전에 연설 좀 해 본 솜씨’라는 말에 ‘전에는 더 잘 했다’며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요. 30만 명이면 조선 시대 한양도성을 가득 메우고도 남을 인구라 ‘왕조가 무너졌을 역사’라고 하건만 ‘무식이 용감’이라고 오직 ‘돈벌이’라는 우상에 빠져있는 이명박은 두어 번 고개를 숙이더니 자신이 마치 모세라도 되는 양 착각에 빠져 있어 많은 사람들의 속을 태우고 있습니다. 87년 이후 지금까지 이 땅 한반도에서 벌어진 수 많은 사건에 동참하고, 때로는 지켜보면서 ‘하느님의 섭리’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이번 광우병 쇠고기 정국을 통해 느낍니다. 평소 준비 제대로 해 두었으면 투쟁의 파고가 올랐을 때 ‘주여 나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한 이사야 선지자처럼 나설 수 있었을 텐데 아둔함과 기존의 관성에 젖어 흐름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수시로 블로그를 관리한 덕분에 사진 편집 기술도 늘고 장문의 글도 쓰지만 간단하게 쓰는 요령도 익혔으니 하느님은 그저 일회용으로 놔두지 않으시더군요. 악화된 불면증과 ‘울화가 가득차 있다’는 한의사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 속의 나는 결코 유아독존할 수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작년 노무현 정권 때 두들겨 맞은 벌금도 있는데 광우병정국을 지나면 또 얼마나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처럼 경찰의 폭력진압은 없었지만 인도를 막으면서 헌법에 보장한 이동권 마저 방해한 횡포에 굴하지 않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해 놓았습니다. 인권위원회 결과를 보고 검찰 고발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경찰의 준비도 만만치 않아 대가를 지불해야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네요. 서울 같으면 벌써 소환장이 날아 왔지만 심한 다툼이 별로 없어 그냥 넘어갈지 모르나 몇 개월 후 ‘출두하라’는 통지서가 어디서 올지 모르겠습니다. 벌써 만만해 건드리기 쉬운 인터넷 동호회 대표가 경찰에 불려가고 구속 영장을 청구하는 등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누님의 명령을 따라 보장된 것 전혀 없는 길을 달려갈 뿐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지극히 소박한 바람을 짓밟는 악의 무리에 맞서는 것은 윤희용의 선택이 아닌 ‘주님의 명령’이기에 고개 숙이고 따르려 합니다. ‘당신 그런 거 좋아하지 않느냐’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싸우고 싶어 하는 사람 없다. 다만 장애물이 있기에 걷어 내려할 뿐’이라고 하기도 이젠 지쳤습니다. 아직 곳곳에서 부당한 공권력과 무분별한 개발에 대응하는 선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하는 싸움이 대부분이라 옆에서 보면 가슴이 메어 심장이 찢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랍니다. 이번 광우병 정국을 지나면서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 사회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우리 10대들이 이렇게 똑똑하고 당찰 줄 몰랐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하느님이 보여주신 것 같아 ‘아멘’으로 받아드립니다. 환절기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불의와 같이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