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출범한 진보신당의 홍보대사를 맡은 배우 김부선 씨는 폴리테이너로 지칭됐던 기존 인사들과 다른 느낌을 준다. 기득권과는 거리가 멀고 앞날이 불투명한, 그래서 별로 득볼 게 없을 것 같은 진보신당에 발을 들였다. 게다가 대마초 비범죄화를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을 내는 등 국가권력과도 투쟁을 벌이고 있다. 액세서리 같은 느낌의 다른 폴리테이너와 달리, 논란이 될망정 자기 주장을 뚜렷이 펴는 점이 이채롭다. 최근 인터넷사이트 다음의 토론방인 ‘아고라’에선 김부선 씨와 한반도 대운하를 지지하는 노래를 부른 모 가수의 차이점을 거론한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부선 씨는 “당이 부르면 언제든지 얼굴 마담으로 쫓아다니겠다. 그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라면서도 “사기꾼들이 하는 정당이 아니라, 건전하고 건강하고 섹시한 정당 하나 키워주자. 이런 정당이 하나쯤 나올 때가 됐다”고 지지 이유를 밝혔다. 이어 “노회찬 의원을 좋아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시위, 스크린쿼터 반대 시위할 때 노 의원밖에 안 보이더라”면서 “한 번도 정당 생활을 해본 적도 없지만, 이름이라도 걸어서 노 의원에게 도움이나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신의 이념 지표는 ‘진보’라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제주 4.3사태 때 남편과 자식들을 잃은 국가 권력의 피해자다보니 공권력에 대한 분노를 키웠던 것 같다”며 “대마초 사건 등 환경이 급진적인 진보로 나를 바꿔가는 것 같다. 내 개인적인 고통이 나를 정치적으로 바꿔가더라”고 했다. 1980년대 말 민주화시위 때부터 거리에 나섰다는 그는 87년 ‘굴레를 벗고서’라는 독립영화에도 출연했다. 지금도 한반도 대운하 반대 촛불시위 등 쟁점이 있는 현장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그는 “진보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이다. 진짜 민주주의는 4대 개혁법안이나 경제 개혁이 아니고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이라면서 “소수자끼리도 뭉쳐서 건강한 정당하나 만들어줘야 한다.
소수자들이 역사를 바꿔버리자”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한때 동성애자를 변태라고 비난했는데 통렬히 반성한다. 예전엔 남자면 당연히 군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도 이해하게 됐다”면서 “나 역시 미혼모 출신에 대마초 흡연자인 소수자”라고 했다. 현 정부에 대해선 “오버 좀 하지 말라”면서 힐난했다. 영어공교육 정책에 대해선 “꼭 필요하면 영어공부를 하면 되지 왜 전체가 다해야 하는가. 왜 이렇게 국민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주는가. 멀미가 난다”며 “영어를 쓰면 한글이 없어지고, 우리 정서가 없어지고, 우리 이야기가 없어진다”고 했다.
“배우생활 35년을 하면 140억원은 벌 수 있다”고 한 유인촌 장관의 발언에 대해선 “나는 연예계 생활 25년, 술집 10년을 하면서 번 돈이 2억7000만원밖에 안 되더라. 유 장관이 어떻게 그렇게 많이 벌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현 정권 실세들이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을 퇴진시키려는 움직임에 대해선 “예술에 사상과 이념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했다. “처벌조항이 헌법상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까지 냈던 대마초에 대해선 “미국에서도 합법적인 우울증 치료제로 대마초를 권한다”면서 “내가 대마초를 피워서 누구를 때렸느냐. 대마초가 마약이라는 근거를 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신문의 정치ㆍ사회면에 등장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배우로서의 경력은 타격을 입었다. 결정타는 ‘헌법소원’이라고 했다. 그는 “출연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면서 “지난 1년 동안 수입이 200만원이다. 드라마 출연 두 번해서 번 게 전부”라고 했다. 연기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10년간 운영하던 술집도 팔았지만, ‘환상의 커플’ ‘달자의 봄’ ‘꽃피는 봄이 오면’ 등 각종 드라마의 출연이 무산됐다. 그는 “달자의 봄에선 대학 총장 부인을 맡는다고 해서, 차까지 팔아 200만원 짜리 옷을 샀다”면서 “옷 사가지고 나오는데 캐스팅이 무산됐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더라”고 털어놨다.
그는 “작가나 감독이 나를 원하는데, 최고 결정권자라는 사람들이 대마초 피우는 사람은 안 된다는 편견으로 잘라버렸다”면서 “너무 많이 잘리니까, 어떤 드라마에 잘렸는지도 헷갈린다”고 말했다. “촬영하다가 사고를 친 것도 아니고, 연기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약속시간을 펑크 낸 것도 아니고 하자는 데로 하는 데도 이렇게 난도질하니까 죽든지 나라를 떠나든지 해야겠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고 했다. 맘고생을 하면서 몸무게도 15㎏나 빠졌다고 했다. 자신을 “대한민국 삼류 여배우”라고 표현했지만, 배우로서 자존심은 잃지 않은 듯했다. 최근 모 방송국 드라마에 캐스팅 제의를 받았으나, 그 드라마의 기획자가 과거 자신의 캐스팅을 취소시킨 사람인 것을 알고 출연을 포기했다고 했다.
김부선 씨는 “하자 없고 능력 있는 여배우를 편견으로 캐스팅하지 않고, 사람을 조롱한다면 하지 않겠다. 신인들에게는 오죽하겠느냐”고 했다. “대마초 흡연으로 인한 5번의 처벌ㆍ구속 때문에 긴 암흑의 터널에서 있었다. 터널의 끝에 왔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다시 터널의 입구에 온 듯한 느낌”이라며 “또 다시 (배우로서) 암울한 시간이 왔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는 “나는 준비된 배우고, 좋은 배우라고 생각한다”면서 “배우는 시대의 아픔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시위 현장에도 가고 법정에도 가고 있다.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이용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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