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대통령선거, 정체성도 없고 전략도 없고.

녹색세상 2007. 12. 26. 02:10
 

  17대 대선은 민주노동당에게 “어떻게 해야 많은 득표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궁극적 고민을 안겨줬다. 득표전술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판단 없는 선거평가는 기실 하소연에 그칠 공산이 크다. 정권을 내준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우 자체 대선평가팀과 외주용역으로 패배원인을 분석할 계획이다. 선거를 마주한 정당의 득표전술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기층득표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 후보와 당의 색을 잘 홍보하는 중앙공중전, 지지자들의 발을 묶는 조직전략이 그것이다. 이 중 진보정당의 지역활동가들이 이번 선거에서 어떻게 뛰었는지는 민주노동당의 자체 평가에 맡겨두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삼성’ 이외의 공중전략 있었나?

 

 


  우선 민주노동당의 공중전부터 살펴보자. 한나라당과 통합신당 등과 같은 보수정당은 언론을 상수로 놓고 고도의 정치를 한다. 선거의 계절이 도래하면 정당은 이런 기본업무를 더욱 활발하게 한다. 온갖 비리로 얼룩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경제 대통령'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며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거나, 단 한차례의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것이 전부인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가 '평화 대통령'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다 이들 정당의 전략 덕분이다. 통합신당이 BBK 의혹을 제기하며 “거짓과 진실을 대결”이라 이번 대선 구도를 바꿔놓으려 한 것도 선거 전략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그러면 민주노동당은 어떠했을까?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에서 내놓은 큰 밑그림은 ‘삼성’이 전부였다. 지지자들이 운집했을 때도, 노동자들 앞에 섰을 때도, 농민들 앞에 섰을 때도 권영길 후보의 입에서는 항상 삼성이 울려 퍼졌다. ‘삼성’ 이슈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 챈 민주노동당은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 다시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를 전면에 꺼내 들었다.

삼성 문제를 부각시켜 ‘특검법’까지 이끌어낸 것은 소중한 성과였다. 하지만 삼성 특검법에 이르기까지 민주노동당은 ‘범여권 단일화 프레임’에 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즉 ‘삼성’ 이슈는 민주노동당만의 이슈가 아니라, 통합신당, 문국현 후보의 이슈이기도 했던 것이다.


  무상의료와 교육도 이미 오래된 내용으로 귀에 익은 노래였다. 민주노동당은 “4년 전의 총선 때보다 그 내용이 훨씬 과격해졌다”고 자신했으나 이 내용은 이미 보수정당들이 흡수한 정책이었고, 체제의 근본을 뒤 흔드는 진보정당 다운 정책도 아니었다. 정동영ㆍ이명박ㆍ문국현 후보 모두 무상보육과 교육 등을 공약했으며, 특히 노무현 정부는 복지예산의 증액으로 무상의료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놓기도 했었다. 대중들에게 신선한 공약이라 평가받기 어려운 전략이었던 셈이다. 민주노동당은 삼성을 얘기하며 ‘삼성 국유화’를 말하지 않았고,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말하며 ‘초과소유 부동산에 대한 몰수’를 말하지 않았다. 과격하게 느껴질 법한 이슈는 제기하지 않았던 것인데, 이는 민주노동당 전략가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봄직하다. 요컨대 '정체성'이 뚜렷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친 ‘코리아 연방공화국

 

 


  경선 당시 권영길 후보 캠프에서 제기된 ‘코리아 연방공화국’은 내부 논쟁을 거치면서 찻잔속의 태풍에 그쳤다. 대단한 논쟁이 있었던 것 같지만 실상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은 민주노동당 대변인실을 출입하는 기자들과 당원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이 대선 기간 중 권영길 후보의 입으로 나온 것도 선거운동 초기 두어 번에 그쳤었다.


  관련한 흥미로운 일화도 있다. 대중에게 꽤 많이 알려진 민주노동당의 한 명망가 당원이 권영길 후보가 지역순회를 하는 장소로 달려온 일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권 후보와 마주한 그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이 대선 전략으로 제기되는 것을 강하게 항의 했는데, 항의를 듣던 권 후보는 “내가 지금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말하고 있느냐”며 반론했다. 후보도 자신감이 없고, 이에 반대한 당원도 엉뚱한 데서 화풀이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조승수 전 의원이 ‘코리아연방공화국으로 대선운동 못하겠다’고 언론에 대놓고 선언한 것도 기존 정치판에는 보기 힘든 경우다. 경선 당시 이명박 진영과 칼 위에서 대립했던 박근혜 측 의원들도 본선에 들어서며 “대운하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조 전 의원의 비판은 일종의 경선 불복종으로 비쳐질 만한 행동이었다.


  대선 이후의 김기수 전략기획본부장 행보는 더욱 눈길을 끈다. 김 본부장은 대선 이후 인터넷 매체와의 좌담에서 패배의 원인으로 ‘후보와 특정 정파’의 두 가지를 꼽았다. 만약 통합신당 민병두 전략기획위원장, 이회창 캠프의 강삼재 전략기획팀장, 문국현 캠프의 고원 전략기획단장 등이 언론에 “후보를 잘 못 뽑아 선거에 졌다”고 평가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안 될 일이다. 더구나 민주노동당의 전략기획본부는 선거기간 동안 여론조사 보고서 제출 이외의 기억에 남을 일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문제는 코리아연방공화국과 같은 사회개조 프로그램이 민주노동당 내에서 논의거리조차 되지 않는 다는 점에 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차베스는 감옥에 있으며 볼리바리안 혁명이라는 대안국가를 만들 집권전략을 만들었다. 일종의 국가개조프로젝트였다. 여기에는 석유산업국영화, 제헌의회 소집 등과 같은 구체적 방안들이 포함됐는데 차베스는 선거운동에서 이러한 국가개조프로젝트를 전면에 내걸었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부유세 정당’이라고 불릴 뿐 대한민국을 전면 개조할 구체적 ‘그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국가비전을 제출했다. 당 경선 기간 중 노회찬 의원이 '제7공화국'을 제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비교하자면 무소속 이회창 후보도 뒤늦게 대선에 뛰어들었지만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국가개조 대통령”이란 기치로 15퍼센트의 보수층 지지를 이끌어 냈다. 민주노동당의 국가비전에는 ‘다주택 보유자의 유상몰수’, ‘농업의 공공산업화로 국가가 농민에게 임금을 지급’ 하는 등의 공약이 포함되어 있었다. 혹 ‘코리아연방공화국’이란 용어가 고려연방제를 상기시키는 것이 문제였다면, 이는 수정해 나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모든 문제를 NL과 PD의 대립으로 돌려버리는 우를 범했다.


민중참여경선제 불발이 가장 아쉬워 과연?


  거대 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선거 전반을 장악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였다. 2002년 민주당의 승리에는 노무현 후보라는 ‘상품’도 있었지만, 국민경선제라는 ‘시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시장을 잘 꾸려놓고, 상품을 내세우니 원래의 상품성보다 훨씬 더 좋게 보였던 셈이다. 민주노동당에서 제기된 전략은 민중참여 경선제가 유일했지만 이는 참여인단 조직과 같은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실현 불가능했다. 민중참여경선제를 주장했던 측이나, 반대했던 측 모두 ‘보완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어떤 보완책도 나오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선거 막판 다시 전통적인 계급투표 전략으로 회귀했는데, 전농 민주노총의 활동가들은 소극적으로 선거에 임하기는 했지만, 신나는 표정은 아니었다.


  당의 뒷받침이 없자 다급했던 것은 후보였다. 권영길 후보는 선거운동 중반 수행팀이 ‘양말도 제대로 준비할 틈 없이’ 급작스럽게 만인보를 떠났다. 일부언론에서는 “사람도 별로 없는 논두렁이나 돌아다니고 있다”는 식으로 비아냥댔지만 권영길 후보의 이 같은 판단은 민주노동당의 유일한 득표가능성을 찾아서, 즉 지역활동가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였다. 만인보를 통해 지역활동가들을 격려하고, 민중총궐기에서 민주노동당의 기세를 올리겠다는 생각이었다. 90년 중후반의 운동권 학생들이 “내가 바로 한총련”을 외쳤던 것과 비슷하게,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이 “내가 바로 권영길”이라며 현장을 돌기 시작한 것은 권 후보의 동분서주 속에서 일어났던 현상이었다.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