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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동지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녹색세상 2007. 7. 9. 21:50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을 보고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점에 대해 여성위원장을 비롯한 여성 동지들에게 사과를 드립니다. '침묵하는 것은 악의 편'이라고 지금까지 수도 없이 떠들어 놓고는 정작 내 앞에 벌어진 일에 대해 실천은 커녕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개인적인 핑계를 대자면 이미경 동지가 피해를 입은 무렵을 전후해 너무 복잡한 일이 있어 너무나 긴박했던지라 회의에 참석을 하지 못했고, 나중에 얘기를 듣고도 몇 마디 ‘입에 발린 소리’만 하고 말았습니다. 더 놀랐던 것은 정리를 하는데 '좋은 게 좋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란 것이었습니다. 작년 선거기간 중 음주로 걸렸을 때도 '선거에 들어갔는데 적당히 정리하자'는 게 그대로 재발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음주 사건을 게시판에 올려 이래저래 시달리다 보니 ‘내가 나서서 또 화살 맞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계산이 없지 않았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이름만 대면 어지간한 활동가들이 잘 아는 성직자인 선배에게 “음주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는가”라고 고민을 털어 놓았더니 “남의 생명까지 해치는 중대 사안을 그냥 덮고 간다면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물러서는 것은 정말 비겁한 짓이다” 그렇지만 “문제 제기자에 머물러야지 재판관이 되려는 조심은 늘 해야 한다”는 아주 교과서적인 충고를 들었는데 같이 이름을 걸 사람이 없어 혼자 머리만 싸매다 꼬리 내리고 말았습니다. 동지들에게 “선거 기간 중 일어난 음주 사건이니 당기위원회에 제소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모두가 꼬리를 내려 더 이상 용기를 내지 못하고 비겁하게 그냥 넘어갔습니다.

 

    당사자로 부터 초상권 침해로 제소 당하지는 않을지.... 참교육을 실천하는 노동자입니다.

 

  연수 때 여성위원장님이 ‘2차 피해’를 말할 때 얼마나 가시방석이었는지 모릅니다. 침묵을 지킨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폭력의 피해자인 ×미× 동지 일이 늘 마음에 걸려 이번 연수가 끝나면 “김××, ×미×, ×은× 동지” 세분을 만나 얘기를 하고 함께 행동을 취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둔하게도 정리한 일을 붙들고 있는 꼴이 되고 말았지만 여성동지들이 신속하게 대응하고 같이 고민했던 것을 늦게나마 알게 되어 신뢰감이 더 깊어지기도 하네요.


  작년과 올해 사건을 접하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던 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과는 커녕 ‘말이 나온 근원지가 어딘지’를 캐묻는 심각하기 그지없는 도덕불감증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못이 있을 때 ‘먼저 인정하고 잘못에 대해 사과’ 하는 게 당연하다고 배웠고, 나름대로 그렇게 처신해 왔는데 조직의 결정에 따라야 할 사람들이 “조직의 결정을 위반했고 물의를 일으켜 미안하다. 그 부분에 대해 잘못을 인정한다”는 그 말 한 마디를 영영 들을 수 없었습니다. 기대가 큰 탓인지 인면수심이란 생각이 자꾸만 떠올라 ‘과연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가’라는 회의를 수도 없이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더러운 꼴 안 보려고 떠나는 것은 ‘더 나쁜 짓’이라 약자를 괴롭히는 일에 남들이 침묵을 지킨다면 혼자서라도 문제 제기를 해야겠다고 마음 다져먹었습니다.


  젊은 인문사회학자들이 모여 다방면에 걸쳐 연구와 여러 가지 성과물을 만들면서 '밥상 공동체'를 하고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미숙 대표가 남자들의 술자리 병폐에 대해 “어색한 분위기 해소를 위해 시작한 술자리가 처음에는 윤활유 역할을 하지만 슬슬 ‘남의 얘기’가 나오면서 나중에는 패거리로 변질하는 경험을 수 없이 했다고. 남들이 보기에는 먹물들이 모인 곳이라 굉장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 같지만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논리와 객관성과는 전혀 관계없이 술자리 어울린 회수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 떠오르더군요. 우리가 노는 동네를 둘러 봐도 똑 같고요. 토요일 강의 때 가정 폭력 가해자들이 ‘나이나 가방끈, 재산과도 상관없다’는 말이 딱 맞더구만요. 핑계에 불과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보니 나서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더군요. 앞으로 다른 것은 몰라도 약자를 괴롭히는 일에 대해서만은 가만있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일이 생겼을 때 같이 하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